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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아지트를 찾아서 - 동양화가 박영대씨

보리작가, 낙원을 찾다…

  • 웹출고시간2010.01.03 17:58:54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청주시 수곡동 옛 청주지방 법원·검찰청 담장을 끼고 골목으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우리복집(좌측)이 눈에 띈다.

구지 이 복집을 이야기 하는 것은 청주지방 법원·검찰청이 이전하기 전에 많은 사람들이 애용했던 곳이라 작가의 작업실을 찾는데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1~2분 정도 더 걸어 들어가면 세현순복음교회(우측)가 나온다. 이 주변에서 가장 우뚝 서 있는 건물이다.

여기서 좌측 방향을 보고 걷다보면 몇 집 안가 문패처럼 '송계미술연구소'라고 쓰여진 집이 있다. 이곳이 보리작가 송계 박영대 선생의 작업실이자 자택이다.

해외 초대전과 각 지역 전시로 바쁜 날을 보내다 마침 이달 열리는 전시회 준비 때문에 청주에 내려와 운 좋게 만날 수 있었다.

대문으로 들어서자마자 마당에 심겨진 나무들이 고택(故宅)의 운치를 더하고 있었다. 곧 있으면 개화하는 2월의 빠알간 매화가 한겨울에 볼거리라고 한다.


집안으로 들어가니 비교적 높은 천정에 조명등이 멋스럽게 달려 있었다. 고 가구들과 모던한 인테리어가 선생의 정갈한 인품과 맞아떨어지는 듯 보였다.

선생의 집은 작업실이기도 하지만 '송계만의 작은 갤러리'이기도 하다.

벽에 걸린 작품 하나하나가 이번 전시에 선보일 작품이었다. 주로 보리를 소재로 하지만 늘 변화를 추구하는 선생이기에 이전의 작업과 달라진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했다.

벽면에는 처음 보는 소재의 작품도 있었다. 마당의 앵두나무를 보고 그린 '樹(나무)'라는 작품과 '매화'가 그것인데 최근의 '보리-생명' 시리즈의 작업방식이 묻어나는 독특한 추상화법의 작품이었다.

선생은 전시마다 주로 보리와 생명을 소재로 작품을 내지만 틈틈이 그리는 것이 이 같은 문인화라고 한다.

거실에 앉아 우측에 보이는 방은 미닫이문을 뜯어 보관해 놓은 작품이 고스란히 보인다. 대부분의 방들이 선생의 작품을 보관하는 곳이지만 이곳은 문을 열지 않아도 보이는 곳이라 더 매력 있는 공간이다.

좌측에 방문을 열고 들어가니 선생이 작업하다 만 문인화가 있다. 아직 물감이 마르지 않을 것을 보니 작업하던 중 기자를 맞은 것 같다. 집에 온 손님이 작업실을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했다. 선생은 하나의 작품을 그리기 위해 수도 없이 많은 그림을 구겨 버렸나보다. 화선지가 물감을 먹은 채 구겨져 바닥 한 구석에 쌓였다.

화선지와 먹, 붓, 물감 등 기타 작업에 필요한 것들이 가지런히 정리돼 있었다. 반듯반듯하게 정리돼 있어 여기저기 볼거리가 많았다.

주로 200~500호의 대작들을 선보이는 선생은 이번에 전시될 '보리-생명', '생명의 씨앗' 등의 작품을 '하모니'로 선보인다고 한다.

작품 하나가 60~100호 정도로 기존의 작품보다는 작은 크기이지만 이들을 2~3개 겹쳐야 한 작품이 되는 것이다.

기존의 대작들에 익숙한 이들에게 작가가 내놓은 따끈따끈한 신상과 같다. 소품들을 모아놓으면 대작이 되니 나름 운반도 용이하고 작가 자신도 작품을 만들어 '따로' 또 '같이' 보는 재미가 있을 것 같다.

/ 김수미기자

인터뷰 - 박영대

"예술은 기술이 아니고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창작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직도 배우는 입장에서 늘 새로움에 대한 고민과 열정을 다하는 작가로 남고 싶습니다"

늘 작품의 격을 달리해야 한다는 송계(松溪) 박영대(67) 작가.

청원군이 고향인 그는 늘 '보리'를 소재로 작품 활동을 한다. 예술가로서 자신의 고향사랑을 '보리'라는 소재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그는 첫 선을 보인 '보리작품' 하나로 '보리작가'라는 타이틀을 얻게 됐다. 사람들도 그에게서 늘 보리작품을 기대하기 때문에 그가 문인화보다 더 많이 출품하는 작품이 보리작품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대성여고 미술교사로 근무하던 시절엔 인자한 성품으로 학생들로부터 많은 인기를 얻었다고 한다. 현직에 있는 충북경찰청 이금형 차장도 당시의 제자였다고 귀뜸 했다.

그는 불혹이 되던 해 과감히 교직을 떠나 전업 작가의 길을 걷게 됐다. 당시 망설임도 있었지만 작품에만 몰두할 수 있는 현재가 자유롭고 현명한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박 작가는 지난해 10월 북경에서 열린 한·중 수교 17주년 기념 특별기획 초대전에 참여해 지속적인 한·중 교류의 맥을 잇는데도 큰 공헌을 했다. 당시 한·중 작가 200여명이 참여해 모두 200호 이상의 작품 1천여 점을 전시했으니 규모면에서 화제가 됐던 전시였다.

그때의 전시를 계기로 5일부터 오는 24일까지 서울 종로구 삼청동 '스페이스 모빈'에서 '보리-생명', '생명의 씨앗' 등의 보리 추상 작품으로 개인전을 갖는다. 이 작품들은 오는 4월 대청호미술관에서도 전시될 예정이다.

그는 "아직도 전시가 부끄럽지만 작품을 하는 과정이 나 자신에게 자극제가 된다"며 "좀 더 발전하는 내 모습을 위해 전시를 한다"고 말했다.

타 지역의 전시가 많아 일산에서 머물기도 하는 그는 앞으로도 '보리'작품을 통해 고향사랑을 실천해 가겠다는 자신의 작품철학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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