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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아지트를 찾아서 - 원로 향토소설가 강준희

청렴한 선비문인 세상을 호령하다

  • 웹출고시간2010.08.29 19:55:19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모름지기 글을 쓴다는 것은 어머니가 아기를 출산하는것과 같은 고통이 따른다고 한다.어머니가 온갖 고통을 다 참으며 자신의 뱃속에서 열달동안 아기를 키워 내듯이 오랜시간 펜과 원고지를 마주하고 밤먹는 것도 잊고 밤잠도 설쳐가며 쓰고 지우기를 수없이 반복한 끝에 세상에 얼굴(작품)을 내보내는 인고의 작업을 해야 한다.

이런 산모의 고통을 40여년간 26번이나 겪고, 고령임에도 젊은이 못지 않은 왕성한 집필로 문학도들로부터 '선생님'으로 존경을 받는 한국문단의 원로 작가가 수십년간 충주에 둥지를 틀고 있어 충주를 문화예술의 도시로 빛나게 하고 있다.

충주시 연수동 세원아파트 103동 1010호에서 문학의 혼을 불사르고 있는 향토 소설가 강준희씨(74)가 바로 그 주인공.

원로 향토 소설가 강준희씨(74)가 자신의 집이자 집필공간인 서재에서 200자 원고지에 만년필로 글을 쓰고있는 장면.

ⓒ 김주철 기자
강 작가는 일제시대 단양에서 태어나 어려운 가정 환경으로 초등학교 밖에 다니지 못했지만 독학으로 한학과 영어, 일본어를 통달, 누구도 범접 할수 없는 지식을 갖고 있으며 가요와 동요, 가곡 등 1000여 곡의 노래를 외워 부를 정도로 풍류에도 능한 소설가다.

특히 강 작가는 어려운 가정 살림으로 보통사람들이 상상도 할수 없는 엄청난 고난과 역경을 수없이 겪으면서도 '굴'하거나 '절'하지 않은채 당당하고 떳떳하게 오늘에 이르고 있다.웬만한 사람같으면 타락을 해도 벌써 했고 폐인이 됐어도 벌써 됐을 텐데 지독한 가난과 싸우면서도 세상과 단 한번도 타협 않은채 꼿꼿하게 살아왔으며 그의 이런 청념과 지조, 절개의 '선비' 같은 삶은 언제나 불의 앞에서 망설임 없이 세상을 호통쳐 왔다.

그래서 그를 잘아는 사람이나 문단에서는 그의 인생길이 하 기막혀 한국판 막심 고리끼니(러시아 작가) 현대판 최학송이니 하고 붙여 부른다.

작가의 산실인 세원아파트는 연수동 신시가지가 개발될 당시 지어진 아파트로 주로 서민들이 많이 사는 주거지다.

그곳에서 올해 21년째 살고 있는 작가의 산실을 찾았가 봤다.

원로 향토 소설가인 강준희씨의 집필공간인 아파트 응접실에는 작가가 10대 후반부터 현재까지 글을 쓴 200자원고지가 누렇게 색이 바랜채 산더미를 이루고 있어 작가의 피땀 어린 노력의 일면을 엿볼수 있다.

ⓒ 김주철 기자
현관을 들어서자 반갑게 맞아 주는 작가의 등넘어로 응접실에 차곡히 쌓여 있는 원고지 더미가 눈에 들어 온다.어른키 높이의 원고지가 족히 5더미는 돼 보이는데, 미색 원고지가 누렇다 못해 갈색으로 변한 것이 작가의 연륜을 웅변해 주고 있다.

"내가 10대후반 습작할때부터 지금까지 써온 자식(작품)들이라네.물론 책을 내거나 잡지사, 신문사 등에 보낸 원고지는 빼고 말일쎄."

25평쯤 되는 산실은 작은 주방과 응접실, 서재 겸 작업실인 큰방, 생활을 하는 작은방 등으로 구며졌는데, 3천여권이 넘는 장서로 작가 혼자 생활하기에도 불편해 보일 정도로 비좁아 보였다.

서재겸 작업실인 큰방에서 차 한잔을 마시며 작가의 삶과 작품세계를 들여다 봤다.

원로 향토 소설가인 강준희씨의 집필공간인 서재.4면이 모두 서가로 둘러쳐져 있고 3천여권의 채글이 빼곡히 꼿혀 있다.

ⓒ 김주철 기자
3면이 모두 서가로 꾸며져 천정까지 빼곡히 책들이 가지런히 꼿혀 있다.방 한가운데 긴 교잣상에 방석하나 놓고 원고지에 펜으로 글을 써내려가는 작가의 모습이 오래된 풍경화처럼 친근하게 다가온다.

작가는 현대의 과학문명이기인 컴퓨터를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200자 원고지에 만년필로 글쓰기를 고집하고 있다.

"제자들이 갖다 놓은 컴퓨터와 팩스, 인쇄기가 방안에 있지만 나는 원고지를 고집하고 있지.기계가 좋긴 하지만 왠지 불편함의 즐거움을 빼앗는 것같아서 싫어."

서재에는 평소 늘 그리워하고 존경하며 작품세계의 소재인자 중심인 어머니 고 박악이여사의 영정사진이 모셔져 있다.어머니는 늘 반듯하고 어진 모성애로 지금의 작가 인생을 이끌어 왔다.

문득 여기저기 걸려있는 편액과 족자들이 눈에 들어 온다.

원로 향토소설가 강준희씨의 집필공간인 아파트 응접실에 걸려 있는 좌우명 '깨끗한 이름'과 '청명'

응접실에 '청명(淸名)', '깨끗한 이름'이라고 쓴 편액이 눈에 들어온다.

"내 좌우명일세.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움 없는 삶을 살자는 뜻이지"

또 현관 윗틀에 걸려 있는 당호 '어초제(漁樵齊)'라는 편액이 눈에 들어온다.

서재 입구에 '몽함실(夢含室)' 편액이 걸렸다. '꿈을 머금은 방'이란 뜻인데, 세계최고의 금속활자 장인인 고 오국진씨가 써준 것이라고 한다. 이밖에 소설가 김동리씨가 써준 '同心之言其臭如蘭(말이 마음과 같으면 난과 같은 향기로운 냄새가 난다)'와 시인 박두진씨가 써준 족자등이 걸려있어 작가의 교류세계를 엿볼 수 있었다.

작가의 작품속에는 다소 생경한 토속어나 한문 투의 문장이 자연스럽게 많이 나타나는 것을 볼수 있다.이것은 그가 초등학교 밖에 졸업하지 못했으나 독학으로 중·고등학교 강의록을 단기간에 떼고 국어사전을 통째로 두 번 이상 읽었고 옥편을 '가'자에서 '힐'자까지 세 번이나 베끼기를 하여 한문이건 한글이건 언어 활용에 탁월한데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해박한 지식의 산물이다.특히 그가 살아 온 충북지방 가운데 제천 충주지역 토속어의 감칠맛 나는 능숙한 언어구사는 작가 작품만이 갖는 백미라 하여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따라서 그의 작품은 대학에서 우리말 공부 교재로 채택되기도 한다.

또 작가는 청렴강직한 선비작가로 유명하다.

가난한 시절 검찰 고위 간부가 명절때 쌀을 보낸 것을 되돌려 보낸 일화는 그의 성품을 그대로 보여준다.이밖에 그는 지방이건 중앙이건 각종 문학시상에 한번도 응하지 않고 누가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 꼿꼿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그런데도 작가의 산실에는 문학 제자와 그를 존경하는 이들이 '선생님'하며 발걸음과 전화가 끊이질 않는다.

요즘 작가는 물질문명속에 황폐해진 정신세계를 되살리고자 '선비정신계승회'를 창립, 혼신의 힘을 다해 이끌고있다.

"지금 우리는 물질문명의 향유와 탐닉,정신 문화의 갈등과 상실속에서 주체와 정체성을 잃고 윤리부재, 지조부재,청렴부재,애국부재의 부재시대에 살고 있다"며"올곧고 바른 선비정신으로 사회를 바로 세워야 한다"고 주창하고 있다.

충주 / 김주철기자 kimjc@cb21.net

"올곧은 정신 바로세우기 혼신 확대경 통해서도 글쓰기 계속"

강준희 작가

강준희 작가를 만나면 75세인 연세에도 카랑카랑한 말씀에다 시대를 넘나들고 장르를 불문한 해박한 지식에 감탄하고 꼿꼿한 성품에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작가의 삶은 지난해 펴낸 자전적 소설 '땔나무꾼 이야기'에 오롯이 새겨져 있다.

작가는 "이책에는 내가 살아온 인생축도로 출생 성장에서부터 정신,자세,사상(철학), 신념,좌우명,인생관(세계관)은 물론 청빈 강직 경개(耿介),비타협의 선비정신에 이르기까지 온갖 고난 갖은 역경의 돌닛길이 참담무비의 모진 풍우한설과 함께 오롯이 담긴 고백록"이라고 밝히며 성장통을 앓고있는청소년들에게 일독을 권했다.

일제강점기 단양의 산골에서 태어난 작가는 어린시절 부잣집 외아들로 유복하게 자랐지만 어느날 화재로 모든것을 잃고 아버지마저 일찍 여위어 살을 에는 가난을 겪는다.가난은 쉽게 벗어나지 못하고 70평생을 이어져 작가로 하여금 세상의 모든 일을 경험하는 계기가 됐고 작품의 소재가 되었다.물론 이로인한 가족들의 고통은 배가 됐지만. 작가는 가난하지만 청빈하게 살아 올바르지 않은 일은 하지를 않았다.그래서 더 힘들게 살았다.한국문단은 그를 러시아의 고리키나 한국 근대문학의 최고봉이라는 최학송 보다 월등한 작가라고 평했다.

작가는 60년대 말 월간 신동아에 논픽션 '나는 엿장수외다'가 당선되어 화제의 인물로 뜨기 시작 했고,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하 오랜 이 아픔'이란 실화소설이 당선되었으며, 70년대 중반 현대문학에 그가 살아온 질곡의 이야기를 쓴 '하느님 전 상서'로 정식 소설가로 등단했다.

작가의 작품에는 일제말기부터 근 현대에 이르는 우리 모두의 농촌과 도시의 아픈 시대상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그가 써 온 글의 대부분은 생생한 체험의 산물이다.

40년동안 작가는 23집26권의 책을 냈다.지난해는 이를 10권으로 묶어 충청권 작가로는 처음으로 '전집'을 냈다.

작가는 "앞으로도 건강이 허락하는 한 돋보기를 쓰고 확대경을 통해서라도 집필활동을 계속해 나가겠다"는 의욕을 보였다.

평생 청렴과 지조를 지켜온 작가는 요즘 '선비정신'고양에 혼신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해 지역원로 20여명으로 '선비정신 계승회'를 창림하고 초대회장을 맡은 작가는 "지금 우리 사회는 선비정신을 근간으로한 아름다운 정신문화를 잃고, 무분별한 서양문화와 배금주의로 정신의 부패가 가속화 돼 진실과 신의가 상실된 사회에 살고 있다"며 "선비정신은 진실한 삶과 고상한 인격의 기반일뿐만 아니라 거짓과 부정에 저항하는 비판과 투쟁의 정신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소설가협회와 한국문인협회, 국제펜클럽한국본부 회원으로 한국농민문학 이사, 한국자유문인협회 이사, 중부매일·충청매일·충청일보 논설위원을 역임했으며, 충청북도 문화상과 한국 농민문학 작가상 등을 수상했다.

충주 / 김주철기자 kimjc@cb21.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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