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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비(김희숙)

시인· 주성초등학교병설유교사

창밖으로 보이는 아침이 까랑까랑한 기운으로 가득하다. 처마 밑 풍경이 차가운 비명을 지르고 마당엔 하얀 서리가 내려앉았다. 세상이 꽁꽁 얼었다. 부엌의 작은 창을 통해 뒤란의 닭장을 본다. 일곱 마리의 닭이 종종거리며 돌아다니고 있다. 커피포트에 물을 가득 끓여서 들고 닭장을 향한다. 발아래 밟히는 얼어버린 잔디가 뿌득거리며 뼈 부러지는 소리를 낸다. 예상대로 닭장의 물은 꽁꽁 얼었고, 수분 보충용으로 닭장에 넣어둔 배추도 얼음을 머금고 투명한 색을 띠고 있다. 안으로 들어가 포트의 물을 꽁꽁 언 물그릇에 붓는다. 뜨거운 물이 닿는 부위가 동그랗게 파이며 서서히 녹아내린다. 얼마나 목이 말랐을까. 얼음이 녹자 닭들은 부리를 물속에 넣었다가 천정을 보았다가를 반복한다. 한참을 물을 마시더니 다시 노닐기 시작한다.

닭장밖엔 손님이 어른거린다. 회색 털에 검은 줄이 들어간 들 고양이다. 우리 집에 올 때마다 먹이를 주곤 했었다. 지난가을에 보았을 땐 작은 아기 고양이였는데 제법 많이 커서 어른 티가 난다. 눈은 겁먹은 아이처럼 뜨고 어슬렁거리며 내 동태를 살핀다. 고양이는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거리에서 경계를 늦추지 않는다. 내가 먹이를 주는 사람인 줄을 아는 양 주변을 맴돈다. 사료를 접시에 담아 닭장과 헛간 사이 작은 공간에 놓아둔다. 내가 방 안으로 들어가면 고양이는 사료로 잠시나마 주린 배를 채우리라.

방으로 들어가 밖을 본다. 고양이가 닭장 옆으로 와 사료를 먹는다. 한참 보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도원리 언니다. 점심을 하자고 한다. 청천에 있는 식당에서 그들 부부와 마주 앉았다. 그들은 은퇴 후 청천에서 전원생활을 하고 있는 이웃이다. 우리는 주말이면 만나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그런데 늘 바쁘게 움직이는 우리 부부의 사는 모습이 너무 조급해 보였던 모양이다. 그녀의 남편이 넉넉한 눈빛을 보내며 조곤조곤 입을 연다. "오늘을 감사하며 살아. 오늘 우리가 이렇게 만나서 웃고 있는 것이 바로 선물이니까. 욕심부리지 말고 미니멀리즘을 실천하면서 살아. 살아보니 사는 거 그거 아무것도 아니야. 돈 그거 살 만큼만 있으면 돼. 시골에서 살면 얼마 안 들어. 오늘을 즐기면서 살아"

그렇다. 너무 평범한 진리를 우리는 망각하고 산다. present는 선물이라는 뜻이지만 또 현재라는 뜻을 갖고 있다. 그러니 현재 즉 오늘은 선물인 것이다. "어제는 역사이고, 내일은 수수께끼이며, 오늘은 선물이다."라는 브라이언 다이슨의 말을 떠올린다. 그리고 그 말이 종일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오늘은 선물인데 그 선물을 감사하며 살아야 하는데, 과연 나는 그렇게 하고 있는가. 오늘을 즐기라는 것이 그저 방탕하게 시간을 흘려보내라는 것은 아니니라. 주어진 시간을 알차게 활용하며, 다시 오지 않을 그 시간을 매 순간 느끼며 살라는 것이리라. 인생은 경주가 아니라 그 길의 한걸음 한걸음을 음미하는 여행이라 했던가.

점심을 먹고 그녀의 집으로 향한다. 그녀는 두 사람이 간신히 누울 만한 작은 방에서 겨울을 나고 있었다. 소박한 방에 따듯한 온기가 가득하다. 그네들은 미니멀리즘을 실천하며 자연과 함께하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팥죽을 들고 나오는 그녀의 상도 아주 작고 오래된 소반이다. 팥죽을 먹으며 창밖을 본다. 텅 빈 겨울이 시야에 잡힌다. 잎을 다 떨군 나무들이 겨울바람을 온몸으로 껴안고 있다. 산 아래에는 아무것도 담지 않은 물줄기가 소리 없이 휘돌아 가고 있다. 그들은 세평 남짓한 조붓한 방에 창을 크게 내어, 텅 빈 겨울을 방안 가득 들이고 있다. 무소유의 삶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꼭 필요한 만큼만 취하고 나머지는 자연에게 맡기는 삶. 그러면서도 오늘을 감사하며 사는 삶. 비움으로서 오히려 가득 해지는 삶. 오늘을 소박하게 가꾸는 부부를 보며 '텅 빈 충만'에 대해 생각해 본다. 그리고 내게 주어진 오늘이라는 선물을 어루만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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