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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비

시인,주성초등학교병설유 교사

"쉬는 날이 따로 있나요? 몸 아픈 날이 쉬는 날이지!"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에 돌덩이 하나가 툭 박히는 것 같았다. 삶은 고해苦海라지만 쉬는 날 하루 없이 평생 일만 해야 하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일까. 그 사실을 달관한 듯 받아들이는 그녀를 보며 먹먹함이 몰려왔다.

육거리 시장에 갔다. 쇼핑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한 달에 한 번은 육거리를 향한다. 한 달 간 먹을 식재료들을 사기 위함이다. 그런 날에는 아침을 먹지 않고 시장으로 간다. 시장에서 늦은 아침 겸 이른 점심을 간단히 때울 요량이다. 장을 보고 난 후 길에 펼쳐진 분식점으로 간다. 분식점하면 왠지 풋풋한 향기가 난다. 뽀얗고 통통한 여학생들이 떠오른다. 윤기 나는 생머리를 풀고 앉아 재잘거리며 이야기꽃을 피우는 학교 앞 예쁜 가게가 스친다. 그러나 그곳은 지붕도 벽도 없다. 아케이드 아래 그냥 테이블 몇 개를 놓고 길에 차려놓은 음식점이다. 장을 보기 위해 오가는 사람들이 다 보이고 장사하는 사람들도 모두 보이는 그야말로 노천 분식점이다. 음식의 가격을 물어보니 일괄 한 개에 오백원씩이란다. 브로콜리 머리를 하고 앉아서 음식을 먹고 있는 두 명의 아주머니들 틈에 비집고 들어가 앉는다. 다행히 나도 몇 일 전 머리를 볶아서 그들과 잘 어울리는 브로콜리다. 플라스틱 의자를 당겨 앉는다. 호떡과 오뎅과 떡볶이 그리고 튀김을 접시에 담는다. 고교시절 추억을 되새김하며 혼자 튀김을 떡볶이 국물에 찍어먹는다. 추억의 맛이 입안에 감돈다.

한참을 먹고 있는데 옆에 앉은 아주머니가 정적을 깨며 주인에게 말을 건넨다. "아줌마는 언제 쉬세요? 오늘 토요일인데 이리 나오셨네요?" 그러자 주인이 심드렁하게 답한다. "뭐 쉬는 날이 따로 있나요? 몸 아픈 날이 쉬는 날이지!" 그녀 말소리가 허공을 걸어 귓속으로 파고드는 순간 명치가 아려왔다. 나는 먹던 것을 멈추고 잠시 그네들에게 귀를 내준다. 옆에 앉은 아주머니는 뭔가 할 말이 더 있는 듯 주인에게서 시선을 거두지 않는다. 주인은 타인의 시선을 받는 것에 익숙한 듯, 개의치 않고 열심히 호떡을 만든다. 그녀는 팔에 토시를 끼고 앞치마를 둘렀다. 앞치마엔 밀가루가 흘러내린 자국이 빼곡하다. 마치 하얀 비처럼 주루룩 그려져 있다. 기름이 튄 듯 번들거리는 팔토시는 그녀가 얼마나 오랫동안 시장에서 고되게 일을 했는지 짐작하게 해준다.

옆에 앉은 아주머니가 말을 잇는다. "노는 날이 없어서 돈을 벌어도 쓸 데가 없겠네요. 그 돈 다 벌어서 뭐해요?" 그러자 그 옆에 있는 또 다른 아줌마가 말의 바통을 받는다. "자식이 쓰고 손자가 쓰고 그러겠지요. 엄마들이 다 그렇지, 뭐 나 쓸라고 일하나? 식솔들 쓰게 하려고 일 하지!" 그렇다. 나를 위해 사는 엄마들이 얼마나 있겠는가. 자식이나 가족을 위해 자신을 송두리째 잊고 사는 거지.

주인아주머니는 봄이 익어가는 것을 보았을까. 싱싱한 여름이 발을 슬쩍 들이는 한낮을 기억이나 할까. 연초록 잎들이 짙푸른 녹음을 우려내는 산야를 언제 보았을까. 자식들 바라지에 침침한 아케이트 아래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묻었을까. 환한 자식과 손자의 웃음을 위해 계절을 무심히 접었으리라. 마치 나의 어머니처럼.

시장을 빠져나오며 뾰족하게 눈을 찌르는 햇살을 쳐다본다. 양손에 장 본 것을 들고 눈을 찡그리며 햇살아래 선다. 버스정류장에 브로콜리머리를 한 어머니들이 옹기종기 모여앉아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저 많은 어머니들도 다 같은 마음이리라. 그 어머니가 있었기에 내가 지금 빛나는 태양아래 날리는 꽃을 눈에 담을 수 있었으리라. 시리게 아름다운 날이다. 시리게 아름다운 어머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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