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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비

시인, 주성초병설유치원교사

계절이 또다시 몸살을 앓고 있다. 열꽃이 핀 얼굴처럼 울긋불긋 단풍이 들고 찬바람은 으슬으슬 옷깃을 여미게 한다. 냉기가 슬며시 가슴을 열고 들어와 한밤을 뒤척이게 한다. 쌀쌀한 바람을 막으려 거실문을 닫다 문득 아이비에게 눈을 준다. 거실 한쪽 면을 싱싱하게 지키던 아이비가 바삭하게 시들어 있다.

초록이 넘실거리는 게 좋았다. 족히 7m는 되어 보이는 푸르름이었다. 컴퓨터 옆에 놓인 화분에 발을 묻고, 티브이 위를 지나 반대편 산세베리아 화분이 놓인 벽까지 아이비의 등줄기가 뻗어 있었다. 길게 자란 아이비 줄기를 투명테이프를 이용해 벽 중간중간 고정해서 장식해 놓았었다. 그 푸른 잎새를 보면 괜스레 맘이 풋풋해지곤 했었다. 그런데 한동안 바빠서 물을 주지 못한 사이 잎이 삐죽이며 말라버린 것이다. 손을 뻗어 등줄기를 만져 본다. 바삭한 숨소리가 손안에 가득 퍼진다. 얼마나 많은 갈증의 순간들을 소리 없이 아우성치며 보냈을까. 고요가 집안 곳곳에 살을 불려가는 동안 아이비는 목마름에 살을 말려가며 숨을 놓은 것이다.

아이비의 마른 등뼈를 이리저리 살피다 다리 쪽을 본다. 아직 다리는 마르지 않아 보인다. 고개를 숙이고 자세히 화분을 보니 다리는 물기를 품고 있다. 흙에 묻혀 있는 아이비 발을 상상하며 발 위로 올라온 다리의 10cm 가량을 가위로 자른다. 잘린 아이비의 몸통이 테이프에 의지해 거실 벽면에 걸려있다. 의자를 놓고 올라간다. 벽 군데군데 줄기를 고정해 놓은 테이프를 자른다. 풀죽은 아이비가 맥없이 거실 바닥으로 떨어진다. 마른 줄기를 팔에 둘둘 감는다. 무게를 버린 죽음의 냄새가 손을 타고 푸석하게 온몸에 스민다. 감은 줄기를 빼서 쓰레기봉투에 담는다. 마지막 발악일까. 구겨진 아이비 줄기가 뾰족하게 성깔을 부리며 비닐봉지에 구멍을 내고 삐져나온다. 여기저기 떨어진 잎을 쓸고 소파에 앉아 아이비가 있던 자리를 쳐다본다. 거실이 한껏 허전해 보인다.

발만 남겨진 화분에 물을 흠뻑 준다. 너무 늦은 건 아닐까. 발에서 다시 새순이 나올 수 있을까. 말라가는 내 시간들을 본다. 나도 지금 뭔가를 할 수 있을까. 시들어 가는 나이지만 새로 시작할 수 있을까. 아직도 하고 싶은 일들이 새순처럼 가슴에 뾰족 이며 올라온다. 그러나 머뭇거려진다. 흰머리가 슬며시 고개를 내밀 준비를 하고 있고 시력도 나를 떠나가고 있고 집중력마저도 안녕을 고할 준비를 하고 있지 않은가. 내게 남은 것이 있다면 어떤 일에도 화들짝 하지 않는 느긋함과 어떤 상황에서도 부끄럼을 타지 않는 뻔뻔함과 마짝 마른 나무줄기처럼 좀처럼 끊어지지 않는 질긴 인내뿐이다. 그런데 어쩌자고 하고 싶은 것들은 안개처럼 마음속에 서성이며 진을 치고 있는가.

저녁 여덟 시에 예고도 없이 찾아오는 손님처럼 속수무책으로 찾아오는 욕망을 누른다. 아직 하나도 제대로 하지 못했는데 요즘은 다른 장르에 손을 대고 싶다. 하던 거나 잘하라고 머릿속 생각이 돌이 되어 욕망의 새순을 짓이긴다. 그럴 때마다 마음은 비 온 후 올라오는 버섯처럼 된다. 어쩌면 내가 살아갈 나날이 많지 않다고 생각하니, 하고 싶은 것들은 다 해보고 싶은지도 모른다.

아직 남아있는 욕망에 조심스레 물을 줘 본다. 할 수 있다고 영양제도 투입해 본다. '무엇이든 안 하는 것보다 해 보는 것이 후회가 없으리라. 좀 못하면 어떠한가. 하고픈 일은 하고 살아야 한다.'라고 나를 다독인다. 다시 푸르게 생각의 싹이 자랄 수 있기를 바란다. '가장 늦었다고 생각될 때가 가장 빠른 때'라는 상투적이지만 용기를 주는 거름을 머릿속에 굴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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