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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비

주성초병설유 교사·시인

삶의 길을 걸을 때 이정표가 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을 보며 내 족적을 돌아보고 앞으로 나아갈 길을 살핀다. 그런 사람이 주변에 있다는 것,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그런 그들이 왔다. 빗발이 장대처럼 내리꽂히는 도로라 했다. 새벽에 일어나 약재를 달인 물에 찹쌀을 넣고 오리를 넣어 한 시간 반을 삶아왔다고 했다. 감동이 쓰나미처럼 몰려왔다. 다섯 시간을 달려왔지만 즐거운 길이라 했다. 장거리 운전이 힘들지 않을 리가 없다. 그러나 그들은 환한 웃음을 내게 보내주었다. 그네들이 보러온다고 했을 때 설마설마했었다. 그런데 설마가 사람을 잡았다.

한 달간 청주를 떠나 있는 내게 그들이 청주의 훈훈한 공기를 안고 왔다. 혼자 칩거해 있을 내 황폐한 영혼을 위문하러 온 것이다. 처음에 온다고 할 때 사양했었다. 그네들의 마음은 너무나 감사했지만, 왕복 열 시간이 족히 걸리는 길이기에 차마 오라고 할 수 없었다. 그런데 그들이 땅끝 마을보다 더 먼 섬으로 나를 보러 왔다.

점심을 먹고 소치 미술관으로 향했다. 5대째 그림을 그리고 있는 소치 가족의 내력이 빼곡한 곳을 돌며 위대한 예술혼을 생각한다. 한 우물을 판다는 것이 한 사람의 일생에서도 힘든 일인데 어떻게 대를 이어 그림을 그릴 수 있었을까. 그것은 아마도 선조들의 올곧은 걸음이 이정표가 되어 주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우리는 섬의 요소요소를 돌고 내 작업실로 왔다. 두 평 됨직한 작은 방에 침대 하나와 책상 하나가 전부다. 혼자 있을 땐 좁은 줄 몰랐는데 나를 포함하여 다섯 명이 들어가니 앉을 곳이 없었다. 둘은 침대에 앉고 셋은 방바닥에 앉았다. 나는 신문지를 방바닥에 펴고 수박을 잘랐다. 작고 허름한 공간이지만 그들의 넘치는 사랑에 방안엔 웃음꽃이 피었다.

직업도 다르고 나이도 다르지만 우리는 글을 쓴다는 공통분모로 십여 년을 함께했다. 각자의 일에 몰두하다가 축하할 일이 생기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은행리 아지트에 모여서 기쁨을 함께 나누곤 했다. 모두가 성실히 자신을 길을 걷는 이들로 내게는 좋은 본보기가 되는 사람들이다. 시인이면서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예술 감독과 공무원을 지냈던 심 회장님, 시인이며 사회복지학과 교수인 이 교수님, 시인이면서 영화감독 겸 화가인 윤 선생님, 시인이며 가수인 정 선생님. 모두 내 인생의 나침반이 되어 준다. 가지런한 그들의 삶을 보며 문득 서산대사의 시를 떠 올려 본다.

눈길을 걸을 때

踏雪野中去 (답설야중거) 눈길을 걸을 때

不須胡亂行 (불수호난행) 어지럽게 걷지 마라

今日我行蹟 (금일아행적) 오늘 내가 걸어간 길이

遂作后人程 (수작후인정) 훗날 다른 사람의 이정표가 될 것이다.

그들을 보내고 바닷가를 거닐며 생각에 젖는다. 나도 그들처럼 누군가에게 이정표 같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그렇게 올곧게 늙어 갈 수 있을까. 나는 너무 부족한 사람인지라 알게 모르게 실수를 많이 한다. 또 그로 인해 많은 흠결이 누덕누덕 붙어 있다. 살면서 흔들릴 때면 늘 이 시를 떠 올린다. 그리고 나를 돌아본다. 나는 문학이라는 길을 택했고 그 길을 걷고 있다. 비록 잘 나가는 작가는 아니지만 한 발 한 발 내딛는 걸음이 어지러이 날리지 않길 바란다. 훗날 다른 시인들의 이정표가 되길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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