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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비

시인, 주성초등학교병설유교사

경자년에 맞는 설이다. 북적거리는 명절을 보내고 고요히 앉아 처마 밑 풍경을 본다. 물고기가 허공에 그네를 타며 동그란 소리를 겨울로 날려 보내고 있다. 머릿속에 그날이 행복한 여운으로 쨍그랑거린다.

떡국을 끓여 아점을 먹고 친정을 향해 나선다. 남청주 나들목을 향해 가는 굴다리 밑, 전병 과자를 파는 노점상이 불쑥 눈 안으로 들어온다. 바람이 차가운지 패딩 모자를 뒤집어썼다. 과자 상자를 산처럼 쌓아놓은 채 차들에서 시선을 떼지 않는다. 쌓인 과자 옆에는 한 박스에 오천 원이라는 가격표가 붙어있다. 차창을 내리고 오른쪽 검지 손가락을 펴자 남자는 바람처럼 달려와 과자 상자를 안기고 간다. 상자를 뜯으니 그 안에 비닐로 포장된 과자가 나온다. 비닐을 걷고 과자를 본다. 둥글게 말린 모양, 삼각형 모양, 납작한 둥근 모양 등 다양하다. 노란색, 하얀색, 갈색, 그리고 갈색에 김을 붙인 과자 등 색깔도 다양하다. 과자가 부서질세라 조심조심 뒤적여 본다. 생강 냄새가 확 밀려온다. 생강을 넣어서 만든 과자, 땅콩을 붙인 과자도 있다. 피가 얇은 과자, 두꺼운 과자 그야말로 골라 먹는 재미가 있다. 이렇게 많은 과자가 단돈 오천 원이라니. 뭔가 미안한 느낌이 머릿속에 안개가 피듯 번진다.

무어 그리 바쁜지 은행 들르는 것을 놓치고 말았다. 나들목 가는 길에 농협 24시간 코너가 있다. 무인 인출기에서 돈을 뽑는다. 집에서 챙겨온 봉투에 하나하나 이름을 쓰고 돈을 넣는다. '엄마 늘 건강하세요. 청주 딸.'이라는 문구를 봉투에 적고 마음을 담아 돈을 넣는다. 다음은 큰 조카에게 줄 봉투를 적는다. 군 제대를 하고 복학을 앞두고 있으니 봉투에 '새해에는 꿈을 꾸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라고 쓰고 용돈을 넣는다. 다음은 고 3이 되는 조카의 봉투에 '쉬엄쉬엄 공부하렴!'이라고 써넣고 현금을 넣는다. 그리고 이제 갓 돌이 지난 막내 조카의 봉투에는 '건강하게 쑥쑥 자라거라.'라고 써넣고 세뱃돈을 넣는다. 가족들에게 작지만, 마음을 전달 할 수 있는 나는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가. 주는 기쁨을 누릴 수 있다는 것에 왠지 뿌듯함과 편안함이 몰려든다.

명절은 명절이다. 한 시간 이십 분이면 도착할 곳을 세 시간이 걸려 도착했다. 시댁에 간 동생에게 언제 올 거냐고 전화를 넣는다. 동생은 힘들어 죽겠다며 두 시간 후에야 출발한다고 한다. 나보다 네 시간 늦게 친정에 도착한 동생이 넋두리하기 시작한다. 명절 이틀 전부터 시댁에 가서 전 부치고 갈비 재우고 고사리 볶고 생선 삶고 허리가 휠 거 같다고 한다. 나를 보더니, "언니는 좋겠다."를 연발한다. 나는 시댁 어른이 다 돌아가셔서 동생보다는 명절에 대한 부담이 없다. 부러워하는 그녀를 보며 "나도 전에는 다 했거든. 너무 부러워 마라 부러워하면 지는 거다."라며 농담 반 진담 반 내뱉는다. 결혼한 지 삼 년밖에 되지 않은 새댁이니 명절이 얼마나 낯설고 힘들지 가히 짐작이 간다. 더구나 어려운 시댁 식구들 틈에서 며칠간 음식을 하다 왔으니 얼마나 고되었겠는가. 그 마음을 십분 짐작하면서도 나는 그녀에게 말한다. "어른들 있을 때 잘해. 얼마나 사시겠냐. 어른들 안 계시면 가고 싶어도 명분이 없어서 못 간다." 그러자 동생은 우리나라 남자들은 결혼만 하면 효자 코스프레를 한다면서 투덜댄다. 그런 그녀에게 이제 친정이니 마음 놓고 쉬라고 등을 토닥여 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음식을 가득 챙겨주는 우리 엄마. 엄마의 마음을 한 차 가득 싣고 청주로 돌아온다. 내가 얼마나 더 이 길을 가고 올 수 있을까.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면 과연 나는 이 길을 다시 올까. 엄마라는 매개가 있기 때문에 친정도 있는 것이리라.

허공으로 퍼져가는 풍경 소리, 그 파문 속에 엄마의 얼굴이 가득 퍼진다. 늘 잔잔한 그리움으로 내 가슴에 사는 엄마. 항상 그 자리에 있는 하늘처럼 말없이 떠 있는 엄마. 엄마를 볼 수 있는 북적거리는 설날이 있어서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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