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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비

시인, 주성초등학교병설유교사

머무는 것은 잠시 있는 것이고 있는 것은 없는 것으로 돌아가는 것이라 했던가. 그녀를 천안 터미널에 내려 줬다. 인파 속에 섞이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미어지는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 가슴이 둔탁한 무엇인가로 짓눌려 으깨지 것 같아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신음을 토했다. "이제 다시 보는 건 쉬운 일이 아닐 것 같네요. 교장 선생님도 안 계시니. 선생님 건강하게 잘 살아요." 그녀의 마지막 말이었다. 내 눈 속에 물이 차올랐다.

그녀와 나는 만리포에서 처음 만났다. 25년 만에 복직한 그녀와 신규 발령 난 나는 삼 년 동안 시골 관사에서 함께 살았다. 첫 발령 당시 내 나이 삼십 중반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으니 난 신규가 아니라 그야말로 쉰규였다. 25년 만에 복직을 한 그녀나 뒤늦게 신규로 발령이 난 나나 업무가 서툴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다행인건 나는 컴퓨터를 그녀보다 조금 더 잘 다루었고, 그녀는 학부모와 직원들 간에 소통법을 나보다 더 잘 알았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보완해 가면서 낯선 타지에서 학교생활을 했다. 그런 우리가 안쓰러웠던지 당시 교감 선생님은 둘을 불러 닭백숙도 사주시고 오리 훈제도 사주시면서 격려를 해 주셨다. 업무적으로 부족한 점도 조목조목 알려 주셨다. 우리는 그렇게 이연의 끈으로 묶였다.

그 후 난 가족이 있는 청주로 왔고 그녀는 서울로 갔다. 그리고 교감 선생님은 교장 선생님이 되어 천안으로 가게 되었다. 그리고 일 년에 한 번씩 천안에서 만나 그 시절의 이야기를 나누며 웃곤 했었다. 천방지축이었던 나와 어눌했던 그녀 때문에 교감 선생님은 늘 마음이 쓰였다고 했다. 지난해 겨울 천안에서 마주 앉았지만, 그것이 마지막이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을 못 했다.

코스모스 위로 고추잠자리 소리 없이 내려앉은 날, 부음이 날아들었다. 서예대전에서 상을 받았다고 소식을 준 것이 한 달도 지나지 않았는데,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믿기지 않았다. 그녀와 나는 장례식장에서 만났다. 검은 옷을 입은 그녀가 나를 보더니, 어깨를 들썩였다. 눈에 핏발이 가득한 그녀를 안아주고 영정 앞에 꽃 한 송이를 올렸다. 하얀 국화에 둘러싸인 사진 속 그가 맑은 미소를 보내고 있었다.

국밥을 말고 있는데 고인의 동생이라며 여인이 다가왔다. 느닷없는 날이었다고. 자전거를 타고 가다 어느 구석에 꼬꾸라졌다고. 교장 선생님은 평소에 건강에 무척 신경 썼다고 했다. 그래서 늘 자전거를 타고 운동을 했다고. 사고 직후 교장 선생님이 직접 119에 신고를 하고, 뼈 접합술도 무사히 마쳤단다. 그런데 갑자기 숨이 안 쉬어진다고 소리를 질러 응급실로 옮기던 중 맥을 놓았다고 했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화가 나고 한편으로 생각하면 복이 많은 사람이었다고 말하며 여인은 한숨을 쉬었다. 그도 그럴 것이 교감 선생님은 다리를 절었다. 내가 처음 발령을 받았을 때는 이미 그렇게 된 지 오래되었다고 했다. 어느 날 갑자기 원인도 없이 전신이 마비되었다고 했다. 죽고 싶어도 일어날 힘이 없어서 죽지 못했다고 했다. 그리고 재활을 통해서 마비되었던 몸이 회복되고 다리만 절게 되었다고 했다. 그런 몸으로 교장까지 승진했으니 그야말로 인간승리인 셈이다.

상가를 나와 터미널로 가는 길, 그녀가 깔끔하게 죽는 게 소망이라고 말했다. 왜 그런 말을 하느냐고 하자 교장 선생님이 한 살 많으니 자기도 준비를 해야 할 나이라고 했다. 가족들 마음고생 몸 고생 안 시키고 본인도 고생 안 하고 갈무리하고 싶다며 내 손을 잡았다. 나는 그녀의 눈을 보며 말했다. 죽음은 나이순이 아니지 않는냐고. 아직 더 사셔야 한다고. 그녀의 뒷모습이 인파 속에 섞여 가뭇없다. 오래오래 편안히 지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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