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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비

시인·주성초등학교병설유 교사

한 마리가 알 항아리에서 나오지 않는다. 우리 집에는 다섯 마리 닭이 산다. 친정에서 병아리를 데리고 왔는데, 언젠가부터 맨드라미 같은 벼슬이 머리에 피기 시작하더니 이젠 제법 닭 냄새를 풍긴다. 사료도 산란용으로 바꾸고 알을 낳기 위한 공간을 만들어 주었다. 짚으로 짜서 걸어주어야 하지만 짚 구하기가 쉽지 않아 항아리 안에 겨를 깔아 아늑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 후 닭들은 항아리에 들어가 알을 낳았다. 일주에 열 댓 개 씩 알이 생겼다. 그런데 며칠 전부터 한 마리가 항아리에서 나오지 않는다. 알을 품기 시작한 것이다. 닭이 모이를 먹느라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알에 매직으로 번호를 썼다. 새로 낳는 알과 품는 알이 헷갈리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달력에 날짜를 동그라미 쳐 놓았다. 세이레가 어제로 흐르고 병아리가 태어났다. 그것도 네 마리씩이나.

작은 생명들이 풀어 놓는 삐악 소리가 닭장 안을 가득 채운다. 기쁨과 동시에 걱정이 몰려온다. 닭장 안 틈새를 통해 쥐도 드나들고 주말엔 길고양이도 문턱을 넘나든다. 평소에는 쥐도 살려고 태어난 것인데 먹고 살아야지 싶어서 닭장으로 드나드는 것을 신경 쓰지 않았다. 또 대접에 사료를 담아 뒤란에 놓아두고 길손처럼 들르는 고양이가 먹을 수 있도록 했다. 그런데 상황이 달라졌다. 쥐나 고양이가 혹시 병아리를 해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정오의 뙤약볕처럼 머릿속을 파고든다. 시멘트 한 포를 사 와서 물에 갰다. 쥐가 드나들 만한 틈을 꼼꼼히 바르고, 철망으로 된 불고기판으로 닭장의 사방을 두른다. 조금 안심이 된다. 그런데 길고양이가 문제다. 닭장 문을 열어 두는 주말, 고양이가 닭장 안에 들어가서 닭에게 준 음식 찌꺼기를 먹곤 했다. 고양이도 가끔은 간식을 먹어야지 싶어서 그저 모른 척했다. 그런데 이젠 다 걱정이다. 고양이의 밥그릇을 닭장에서 멀리 떨어진 테라스 앞쪽으로 옮겨 사료를 담아 놓는다. 문제는 닭장 안으로 길고양이가 어떻게 안 들어가게 하느냐이다. 나는 고심 끝에 닭장 앞에 테이블과 의자를 갖다 놓는다. 그리고 그 테이블에 책을 펴고 태블릿을 켠다. 닭들의 파수꾼이 되기로 한다. 호밀밭이 아닌 닭장의 파수꾼.

아침에 일어나 문을 열어주니 닭들이 우르르 나와 마당에서 풀을 뜯고 벌레를 잡으며 논다. 어미 닭은 한동안 닭장 안에서 새끼들을 돌보는가 싶더니 밖으로 나온다. 네 마리 병아리 중 하양이가 먼저 어미를 따라 밖으로 나온다. 어미는 나머지 새끼들이 염려되었는지 다시 안으로 들어간다. 하양이는 어미를 따라 들어가려다 판자로 덧대어 놓은 문지방을 넘지 못하고 울고 있다. 나는 벽돌 하나를 주워 닭장 앞에 놓아준다. 그제야 벽돌을 밟고 닭장으로 들어간다. 잠시 후 어미 닭이 다시 나오고 나머지 병아리들도 벽돌을 밟고 줄줄이 나온다. 하양이 까망이 얼룩이 회색이 각기 모양이 달라 쉽게 구별을 할 수 있다. 한참을 그렇게 바라본다.

햇살이 뜨거워진다. 모자를 쓰고 다시 병아리를 보다 책을 보다를 반복한다. 아니나 다를까 길고양이가 등장한다. 고양이는 내 눈치를 살피더니 어슬렁어슬렁 닭장으로 들어가고 있다. 나는 "양이야 안 돼! 네 밥 앞에 놓았어"라고 한다. 멈칫 나를 쳐다본다. 난 앞 테라스에 가서 대접에 담긴 사료를 들고 와 고양이에게 보여준다. 양이는 알아듣는지 마는지 그저 나만 쳐다본다. "밥 앞에 놓을게, 여긴 안 돼!" 말하고, 사료 그릇을 테라스로 갖다 놓고 돌아온다. 밭쪽으로 실룩샐룩 사라지는 양이의 엉덩이가 보인다. 그런 내 모습을 지켜보던 남편은 "병아리가 걱정 돼서 잠은 어찌 자누? 닭장 앞에서 밤 새겠어" 하며 웃는다.

그 작은 알에서 생명이 태어나다니. 얼마나 신기하고 감격스러운 일인가. 이 무더위에 항아리 속에서 꼼짝하지 않고 삼 주를 품은 암탉도 대견하고 무사히 깨어나 준 병아리들도 대견하다. 중닭이 될 때까지 내 집필실은 닭장 앞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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