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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비

시인,주성초등학교병설유 교사

"다 헤지고 낡은 것을 뭐에 쓰려고 그래요?" 아주머니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냥 제가 간직하고 싶어서 그래요. 지퍼만 좀 달아주세요" "해보긴 하겠는데……. 쓸 수 있으려나?"

엄마가 스무 살 무렵에 만든 것이라 했다. 광목에 한 땀 한 땀 수를 놓고 사방을 손바느질로 꿰맸다. 쥐었다 편 손안의 빼곡한 손금처럼 잔뜩 구겨진 방석을 눈으로 만져본다. 누리끼리하게 바랜 방석, 그 누런빛조차 정겹다. 처음엔 하얀색이었으리라. 수많은 시간을 건너오면서 흰빛을 내주고 누런빛을 얻었으리라. 오랜 바람과 햇빛과 시간을 머금은 것들은 보는 것만으로 먹먹함이 몰려온다. 방석의 앞면엔 포도송이가 주렁주렁 열려있다. 표면 여기저기 실밥이 뜯겨있지만, 촘촘하게 놓인 수는 기계자수를 방불케 할 정도로 정교하다. 얼마나 섬세해야 이렇게 찍은 듯이 수를 놓을 수 있을까. 나는 왜 엄마의 섬세함을 안 닮았을까. 섬세한 것과는 거리가 먼 나는 마냥 신기할 따름이다.

66년이라는 긴 세월, 발효된 시간 속에서 서서히 빛을 읽어간 포도는 연보라다. 처음엔 진한 보라였을 것이다. 가장자리엔 광목으로 프릴을 만들어 달았다. 프릴은 좀이 슬었는지 군데군데 구멍이 나 있다. 당시엔 지금처럼 예쁜 레이스가 없었을 터이니 광목으로 레이스처럼 주름을 잡아 달았을 것이다. 방석을 가만히 쓸어본다. 스무 살, 엄마의 손끝 박동이 그대로 느껴지는 것 같다. 엄마는 꽃다운 그 시절 무슨 꿈을 꾸며 수를 놓았을까. 어떤 생각에 젖어 포도송이를 색실로 채웠을까. 가끔은 손끝을 바늘로 찔리기도 하고, 가끔은 자신이 수놓은 것을 보며 웃음 짓기도 했으리라. 뒷면을 돌려 본다. 지퍼가 없다. 요즘 방석은 뒤쪽에 지퍼를 달아서 안의 솜을 자유롭게 빼낼 수 있게 되어있다. 그러나 엄마의 방석은 오래전에 만들어진 것이다. 그때는 제대로 된 지퍼가 없었으리라. 방석에 솜을 넣고 뒤쪽을 손바느질로 시쳐서 사용했던 모양이다. 부지런하지 못한 나는 빨 때마다 그것을 손바느질로 시쳐서 여밀 자신이 없다. 그래서 지퍼를 달기 위해 수선 가게로 갔다.

"이런 걸 어디서 났대요? 진짜 오래된 것 같은데……. 요즘에 얼마나 예쁜 게 많은데……." 고개를 갸웃거리는 아주머니에게 수선을 의뢰하고 방석을 놓고 돌아왔다. 그래도 안 된다고 하지 않고 수선해 보겠다고 하는 아주머니의 마음이 고맙다. 며칠 후 문자가 날아왔다. "맡기신 것이 완성되었습니다. 오늘은 7시까지 합니다." 퇴근 후 수선집을 향했다. "군데군데 뜯어져서 속을 다른 천으로 대고 박았어요." 지퍼가 달린 방석을 받아들고 부푼 풍선 되어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돌아와 방석을 들고 이리저리 돌려본다. 비록 낡았지만, 생각보다 잘 수선이 되었다. 화려하고 고급스럽지는 않지만 은은한 향기가 풍긴다. 정갈하고 담백한 방석이 꼭 엄마를 보는 것 같다. 나의집 작은 황토방에 놓고 두고두고 보리라. 손님이 오는 날이면 우리 엄마의 66년 전 손때가 묻은 작품이라 자랑도 하면서 앉아 보라고 할 것이다. 수십 년 세월을 깔고 앉은 기분이 어떠냐고 너스레도 떨어 보리라.

문득 '오래된 것은 다 아름답다.'라는 어느 건축가의 책이 떠오른다. 오래된 것들은 그것이 품고 있는 향기와 사연이 있다. 그 사연으로 인해 그것이 아름다운 것이리라. 엄마의 수십 년이 넘는 이야기를 알기에 방석이 내게는 특별한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것이리라.

엄마의 스무 살을 보고 또 보며, 마치 내가 스무 살로 돌아간 것처럼 가슴이 콩닥거린다. 시간을 비워가며 시간으로 남은 오래된 방석을 보며 엄마의 얼굴을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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