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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숙

수필가,원봉초등학교병설유교사

냉장고의 전음이 거실을 휘돈다. 베란다 틈으로 툰드라를 지나온 바람이 파고들고, 나는 혹한기 순록처럼 시간을 되새김질한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삐걱거리는 의자가 밤의 적요를 깨운다. 컴퓨터의 커서가 깜빡거리며 내게 없는 목소리로 말을 하고, 불안은 불온한 구름처럼 커진다. 규칙적으로 깜빡거리는 커서는 "빨리 써! 빨리 써! 어서 생각을 끄집어내!" 라고 재촉하는 것 같다. 생각은 떠오르는 게 아니라 찾아가는 거라 했던가. 멍하니 삼십 분 째 앉아 찾아지지 않는 생각을 떠올리고 있다. 아니 떠오르지 않는 생각을 찾고 있다.

낡은 책상 위엔 낮에 쓰다 벗어둔 마스크가 구겨진 파지처럼 뒹군다. 그 옆에 머리를 질끈 동여맸던 검은 끈이 놓여 있고 바로 옆에 안경집이 널려있다. 우측으로 시선을 돌린다. 내 작은 책상은 사계절을 다 품고 있다. 여름에 주워 온 매미껍질이 바삭하게 말라 있다. 한 생애가 빠져나간 구멍인 듯 길게 수직으로 갈라진 등을 보이며 모로 누워있다. 그 옆엔 회색 팸플릿이 납작하게 나를 본다. 가을에 갔던 문학 강좌 팸플릿 안에서 입을 굳게 닫고 있는 시인. 그리고 그 옆엔 입술이 틀 때 사용하던 겨울용 바셀린 통이 넘어져 있고, 그 옆에 언제 썼는지 기억에도 없는 딱 풀이 누워있다. 풀 통 아래엔 청주시장이라고 찍힌 지방세 고지서가 있다. 그 옆에 사천 분의 일로 축척된 지구본이 덩그러니 서 있다. 손을 뻗어 지구본을 돌린다. 땅보다 바다가 월등히 많은데 왜 해구가 아니고 지구일까.

멕시코, 서인도제도, 수단, 스리랑카, 인도, 타이, 대한민국, 국제 날짜 변경선 지나 다시 멕시코. 수많은 도시와 하늘과 바다가 내 손안에서 빙글 돈다. 기울어진 지구본 안엔 참 많은 것이 담겨 있다. 갸우뚱하게 기울어진 각도는 생각을 하고 있는 머리 같다. 지구본의 기울어진 각도만큼 고개를 기울여 본다. 기댈 곳 없는 허공에 머리를 누이고 생각에 잠긴다.

아이의 그림이 떠오른다. "이 눈물 속에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다 들어있어요." 아이가 내게 그림을 보여주며 입을 연다. "어떤 말인데?" 라고 묻자 아이는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연다. "엄마를 만났어요. 난 울기만 했어요. 눈물 속에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다 담았거든요." 순간 왈칵 아픔이 쏟아지며 명치가 아려왔다. 아이는 오래전에 헤어졌던 엄마를 지난 주말에 만났다고 했다. 하고픈 말이 얼마나 많았을까. 얼마나 많은 말이었으면 눈물로 대신했을까. 엄마와의 하룻밤을 아이는 잊지 못하는 듯하다.

아이는 어미의 이슬을 먹고 자란다고 했던가. 아이는 평소에 무던히도 내 속을 썩인다. 책상을 가위로 긁어 놓는가 하면 방충망에 모조리 연필로 구멍을 내놓기도 한다. 어떤 날엔 우유를 던져서 사물함 뒤쪽 빈 공간에 넣기도 하고, 점심 식사 후엔 창가에 올라가 내 가슴을 조마조마하게도 한다. 또 친구들이 갖고 노는 장난감을 이유도 없이 발로 차버리는가 하면 옆에 있는 아이를 툭툭 치며 다니기도 한다. 그런 아이를 어떤 날은 야단도 치고, 어떤 날은 다독이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모른척하기도 하며 일 년을 건너고 있다.

난 아이를 꼬옥 안아주었다. 내가 함께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아이가 잘 자랐으면 좋겠다. 그래서 눈물방울이 아닌 언어로 자신의 할 말을 할 수 있었으면 한다. 그 말을 들어줄 따듯한 누군가가 옆에 있었으면 한다.

손을 뻗어 지구본을 돌린다. 수많은 도시와 수많은 바다처럼, 수많은 아이들이 내 곁을 스쳐 갔고 또 앞으로 스치고 지날 것이다. 그때 마다 잠시나마 마음을 터놓고 자신의 말을 거리낌 없이 뱉어 낼 수 있는 편안한 선생님으로 남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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