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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숙

수필가, 원봉초병설유치원교사

 이 곳에는 길이 없다. 바꾸어 말하면 어디를 가나 발 딛는 곳은 모두 다 길이 된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길이 없는 곳에 길을 만들며 달리는 중이다. 끝없이 펼쳐진 초원은 수많은 길을 숨기고 있다. 간간히 초원을 가로지르는 기다란 바퀴 지국이 눈앞에 늘어져 있다.

 마치 오빠의 머리 위에 나던 길 같다. 보자기를 어깨에 두르고 엄마에게 머리를 맡기던 중학생 오빠가 내 기억의 문을 열고 들어온다. 오빠의 머리카락을 삼키며 지나가던 바리캉 자국. 그 바리캉 자국 같은 가느다란 바퀴 자국이 거대한 초원에 누군가 먼저 길을 내고 갔다는 것을 짐작하게 해준다.

 운전사는 초원에 나 있는 바퀴 자국을 밟지 않고 초원 위로 또 다른 길을 만들며 달린다. 나는 풀을 뭉개며 달리는 운전이 마뜩잖았다.

 몽골에 여러 번 와 보았다는 일행에게 왜 나 있는 자국 위로 달리지 않고 다른 풀을 밟으며 가냐고 물었다. 그의 대답은 내 생각의 깊이가 얕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이곳의 유목민들은 한 번 갔던 곳에 또 다시 바퀴 자국을 내지 않는다고 한다. 차가 여러 번 지나간 길은 풀이 죽기 때문에 한 곳만 줄기차게 가지 않는단다. 그래야 새로이 풀이 난다고. 그렇지 않으면 그곳은 영영 풀이 나지 않는단다. 새삼 그들의 지혜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길을 보며 생각에 젖는다. 길은 어디에나 있다. 또 길은 어디에도 없다. 도시는 길을 하나로 통합한다. 문명은 반듯하게 닦인 길을 우리에게 줬다. 그러나 그 반듯한 길만을 가는 것은 다른 곳을 못 보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은 아닐까. 잘 포장된 하나로 통합된 도로는 어쩌면 다양성을 말살한 결과는 아닐까.

 우리는 문명의 발달 속에 잘 닦여진 길을 걸으며 편리하고 안락한 생활을 하고 있다. 그 길을 통해 시간을 줄이고 공간을 줄이며 살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 요즘 우리들은 사람들을 '신이 된 인간'이라고도 한다. 인간은 물길을 만들고 불길을 만들고 사람도 복제하고 생명도 연장한다. 과거에는 신만이 할 수 있었던 영역에 인간이 발을 디딘 것이다.

 과연 그것이 인간을 삶을 풍요하고 행복하게 만들었을까. 과학은 사람이 상상 하는 것은 모두 현실이 된다는 믿음과 함께 인간을 초월적인 존재로 만들었지만 개개인은 어떤가.

 인간 개개인은 오히려 더 힘없는 존재가 됐다. 기계나 문명에 의존해 점점 나약해 지고 감각이 퇴화되는 문명치 기계치가 되어 가고 있다.

 나는 네비게이션이 없으면 길을 찾지 못한다. 그리고 핸드폰의 단축키를 사용하고부터는 단 한명의 전화번호도 제대로 외우질 못한다.

 그러나 몽고의 유목민들은 네비게이션이 없어도 길 없는 길에 새로 길을 내며 촉으로 목적지를 다 찾아다닌다고 한다.

 다시 길을 달린다. 아무데도 없는 길을. 아니 지천으로 널린 길을 달린다. 뒤로 뒤로 멀어지는 길을 돌아보며 내 인생의 길을 돌아본다.

 안전한 길 곧은길 좋은 길로만 걷고자 했던 내가 있다. 길이 아닌 곳은 가지 않으려 했다. 그것은 두려움 때문이었으리라. 찬 이슬 밟히는 풀 숲도 가고 험한 산길도 가보고 졸망한 오솔길도 가보고 탄탄한 대로도 가 보았다면 내 삶이 더 풍요롭지 않았을까. 더 다양한 사유의 공간을 간직하고 있지 않을까.

 이제 부터라도 한 길만을 고집할 게 아니고 마음 내키는 대로 내 길을 가리라. 어디를 가나 길이 되는 길을 위해 달리며 내 사유의 집을 키워 가리라. 없는 길 위에서 아무것도 없이 사는 시린 삶을 돌아보며 생각에 잠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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