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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비

시인, 주성초병설유치원교사

 무더운 날씨를 피해 호이안의 투본강으로 향한다. 강어귀에 이르자 개미 떼처럼 사람들이 바글거린다. 바구니 배(퉁바이)를 타기 위해 줄을 선 것이다. 나도 슬쩍 그들 속에 발을 끼워 넣는다. 익숙한 한국 음악이 흘러나온다. 기도를 보는 듯 작고 검은 청년이 한국 노래에 맞춰 연신 몸을 뒤튼다. '오빠 한번 믿어봐~. 너만 바라보리라~. 평생토록 내가 안아줄 게~.' 청년의 목소리가 강의 수면위로 툭툭 떨어진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말로만 듣던 바구니 배가 내 앞에 멈췄다. 어릴 적 들판에서 나물을 캐 담던 소쿠리를 닮았다. 봄볕이 마당 가득 펼쳐지는 날이면 난 소쿠리를 허리에 끼고 찬칼을 들고 논둑으로 밭둑으로 흘러 다니곤 했다. 공 벌레처럼 몸을 들에 말아 넣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나물을 소쿠리에 채웠다. 등위로 따듯한 햇살이 살포시 내려앉고 간간이 찬 기운을 품은 바람이 귓불을 스치고 갔다. 한나절을 그렇게 나물을 캐고 나면 바구니 안에 티끌 반 나물 반이 찼다. 그것을 집에 갖고 가면 엄마는 티끌을 골라내고 나물을 분류했다. 망초순은 된장 고추장을 넣어 나물 반찬을 해 주셨고, 캐온 쑥으로는 쑥버무리와 쑥국을 끓여주시곤 했다.

 둥그런 바구니 배에 조심스럽게 발을 디딘다. 배에 타자 갑자기 휘청 바구니가 흔들린다. 얼른 자리에 앉는다. 오래전 이것을 타고 바닷가에 나가 물고기를 잡으며 생활을 꾸려나갔던 배라고 한다. 지금은 관광객을 태우고 갖가지 묘기로 즐거움을 주고 있다. 까맣게 그을린 사공이 반가운 듯 눈빛을 보낸다. 나는 가볍게 눈인사를 하면서 웃어준다. 사공이 나뭇잎으로 메뚜기 반지를 만들어서 손에 끼워준다. 사람의 기분은 사소한 것에 의해 좌우된다. 아무것도 아니지만, 마음이 담긴 물건들은 기분이 좋아지게 만든다. 금방이라도 살아서 튀어 오를 것만 같은 반지를 보며 기분이 활짝 피어난다.

 한참을 바구니 배를 타고 나가자 제법 강이 넓어진다. 그곳에서 노를 젓던 다른 청년은 바구니를 돌리며 묘기를 부린다. 우리들은 그 묘기에 손뼉을 치며, 넓적한 노에 달러를 붙여 청년에게 내민다. 돈을 받은 청년은 더 신이 나서 격렬하게 빙글빙글 돈다. 타국에서 만나는 우리나라의 노래와 춤과 말에 왠지 자랑스러움이 배어 나온다. 황진이, 시골 버스. 내 나이가 어때서, 샤방샤방, 앗 뜨거뜨거, 강남스타일 등 우리나라에 들어 본 적이 있는 노래들이다. 그러나 이렇게 많은 노래를 한꺼번에 귀에 넘치게 들어 본 것은 처음이다. 타국에서 만난 노래들이 더 친밀하게 다가온다. 종일 우리 가락이 귓가에서 스멀스멀 피어 올라온다. 우리 것을 즐겁게 불러주는 그들이 고맙다. 그들에게 좀 더 친절하게 겸손하게 대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한참을 그렇게 뱃놀이를 한 후 우리는 배를 탔던 곳으로 돌아온다. 되돌아온 바구니 배가 둥글게 돌면서 멈춘다. 바구니 배에서 일어서자 둥근 배가 또다시 휘청거린다. 이름 모를 태국인 남자의 손을 잡고 선착장에 오른다. 휘청거리는 엄마가 자꾸 머릿속으로 찾아온다. 팔순이 넘으신 엄마는 다리에 힘이 풀려서 매 걸음마다 휘청거리며 땅을 딛는다. 나를 위해 평생을 휘청거리며 살았을 엄마. 지난 여름 통영에 갔을 때 다리에 힘을 주지 못하셨다. 동생과 나는 엄마를 양쪽에서 부축해 가며 케이블카를 타고 배를 타고 여름 속을 떠다녔다. 엄마는 이게 마지막 여행이 될 것 같다면서 너무 힘들다고 하셨다.

 엄마는 고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주로 나물 반찬을 드신다. 소쿠리 가득 나물을 캐서 엄마에게 음식을 만들어 드리고 싶다. 돌아가면 머위와 호박잎을 뜯어 소박한 밥상을 차려드리련다. 달콤 쌉소롬한 엄마의 향기가 머릿속을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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