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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비

김주성초등학등학교병설유교사

물의 시간이 흐르고 바람의 시간이 흐르고 도시의 시간이 흐른다. 저마다의 속도로 흐르는 시간이 노을에 젖고 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 중 하나는 창밖 풍경 보며 멍 때리기다. 어둠을 밀어내는 새벽 창밖, 비 오는 날의 빗소리가 몰고 오는 아슴한 창밖, 휴일 오후 놀이터에서 아득하게 들리는 아이들 목소리와 함께 보는 햇살 내리쬐는 창밖 등 어느 하나 가슴 적시지 않는 풍경이 없다. 그러나 뭐니 뭐니해도 해 질 녘 창밖 풍경이 제일 좋다. 칸나 빛으로 물들어가는 서녘 하늘은 매일 봐도 매일 보고 싶다. 차 한잔을 손에 쥐고 붉게 물드는 하늘을 보면 내 안에 담긴 여러 가지 감정들이 모양을 바꾼다. 처음엔 미어지는 느낌이다가 다음엔 뾰족한 칼날로 가슴을 찌르는 느낌이다가 어느 순간엔 따듯한 체온이 가슴속에 천천히 번지는 느낌이다. 마치 한지에 물이 퍼지듯이.

퇴근 후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차를 한잔 타서 베란다로 향하는 것이다. 베란다엔 초록 의자가 창밖을 내다보기 좋은 위치에 놓여있다. 의자 위엔 노란 우비 입은, 구름빵 인형 홍비와 홍시가 앉아 있다. 내가 집을 비운 낮 동안은 홍비, 홍시가 창밖 풍경을 눈에 담는다. 매일 현관문을 밀고 들어오면 옷도 갈아입지 않고 서둘러 차향을 맡으며 의자에 앉는다. 그때가 노을이 가장 절묘하게 번지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눈은 창밖으로 조준한다. 한참을 그렇게 머리를 텅 비우고 저물어가는 하루를 배웅한다. 하늘이 얼굴 붉히며 나를 내려다보고 나는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시간에 흠뻑 빠진다. 따듯한 차가 입안을 구르다 목젖을 지나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그 안온한 느낌이 좋다. 지친 몸이 포근하게 데워지는 기분이랄까. 나를 다 내려놓고 풀린 눈빛으로 맞이하는 저녁, 아무 생각 없이 삼인칭 시점이 되어 창밖의 풍경을 눈에 담는다.

먼 하늘 아래 짙푸른 산이 노을에 젖고 산의 어깨쯤엔 철탑 두 개가 씩씩하게 서 있다. 아파트 숲 사이로 난 작은 길은 길을 끌고 산으로 오르고, 산은 길을 말 없이 받아주고 있다. 차들은 아스팔트를 긁으며 황혼 속을 질주하다 신호등에 멈춘다. 빨간 불에 멈춘 하얀 차가 장난감처럼 보인다. 허리가 긴 버스 한 대가 회전축을 그리며 우회전한다. 차도 옆 초등학교 부지엔 풀들이 키를 뽐내며 즐비하게 서 있다. 언젠가 저 풀의 시간도 자리를 내어주고 학교가 들어서리라. 문득 내려다 본 402동 앞에는 한 노인이 벽에 기대어 담배를 피워물고 있다. 그렇게 각자의 시간 들이 각자의 모습으로 흐르는 저녁이다. 한동안 붉게 끓던 노을이 어둠에 자리를 내어준다. 한소끔 끓고 난 뒤 앙금을 가라앉히듯 어둠의 입자가 소리 없이 내려와 저녁을 채우고 있다.

오늘도 여지없이 창밖에 정신을 떼어주고 있는데 등 뒤에서 아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엄마~ 밥 언제 먹어요? 제가 오늘 약속이 있어서 나가봐야 하는데……." 오늘은 너무 오랫동안 정신을 놓았나 보다. 멍 때리던 정신을 주섬주섬 챙겨서 일어난다. 이제 엄마로 돌아갈 시간이다. 살림에는 도통 취미가 없어서 늘 허둥대는 엄마지만 저녁을 준비한다. 이렇게 매일 풍경을 볼 수 있는 나는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가.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는 시각이 있고 따듯한 차를 맛볼 수 있는 미각이 있고, 노을의 시간과 악수하며 나를 돌아볼 수 있는 가슴이 있고, 그리고 작지만 내 몸 누일 수 있는 집이 있고, 나를 언제나 지원해 주는 가족이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 무엇보다 나를 돌아 볼 수 있는 시간이 아직은 남아있다는 것에 감사한다. 하루를 정리하는 저녁처럼 인생의 황혼에 서서 욕심부리지 말고 내 길을 가리라. 서서히 어둠에 몸을 내주는 노을처럼 기꺼이 사람들에게 자리를 내주어야 하리라. 그렇게 있는 듯 없는 듯 다른 사람의 가슴을 따듯하게 물들이는 저녁놀 같은 사람으로 남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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