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기사

이 기사는 0번 공유됐고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웹출고시간2023.04.11 17:40:57
  • 최종수정2023.04.11 17:40:57

김나비

시인·한천초등학교병설유 교사

이 영화를 보면 꼭 잠을 자게 된다. 나는 몇 년째 트로이를 보고 있다. 그러나 단 한 번도 제대로 영화를 보지를 못했다. 남편은 내가 영화를 틀어놓고 잠드는 바람에 무려 다섯 번이나 브레드피트의 활약을 봤다고 한다. 몇 년 전에 책 읽기 모임에서 『일리이드 오디세이아』를 읽기로 했다. 벽돌보다 더 두꺼운 책을 사놓고 몇 번이고 읽기를 시도했으나 완독하지 못했다. 그래서 손쉽게 『일리이드 오디세이아』의 내용을 더듬어 보고자 선택한 영화가 트로이였다. 트로이는 책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그러나 영화도 쉽지 않았다. 난 영화를 보는데도 여러 번 실패했다. 전쟁 장면이 나오면 꼭 잠들게 된다. 전쟁을 좋아하지 않아서 그런 건지 너무 장시간 전쟁 장면이 나와서 그런 건지는 알 수 없다. 시청 30분을 넘어가면서 전쟁 장면이 나오면 매번 눈꺼풀이 무거워진다. 그러나 이번만은 참아야 한다. 이번엔 기필코 앤딩 장면까지 보리라.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삶과 죽음에 대해, 영웅의 삶과 평범한 인간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본다. 영웅도 평범한 인간도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한다. 그러나 그 죽음은 삶의 일부이다. 죽음이 있기에 우리의 삶이 찬란하고 아름다운 것이다.

아킬레스에게 포로로 잡혀 온 브리세이스는 신은 경배의 대상이라고 말하는 사제이다. 심지어는 전쟁의 신인 아레스마저도 경배의 대상에서 예외는 아니라고 한다. 그런 그녀에게 아킬레스는 말한다. "아무도 모르는 비밀을 알려줄까? 신은 인간을 질투해. 인간은 다 죽거든. 신은 죽을 수 없는 존재들이지. 우리는 늘 마지막 순간을 살지. 그래서 삶이 아름다운 거야. 이 순간 너는 가장 아름다워. 이 순간은 다시 안 와!" 그 대사를 듣는 순간 명치에 돌덩이 하나가 쿡 박힌다.

영화의 전반부에 많은 병사가 죽는다. 시신을 수습할 때 시신 아래 그림자처럼 찍힌 핏자국이 내 시선을 베어간다. 도장처럼 새겨진 자국은 시신이 살아있었다는 흔적을 땅에 새긴 것이리라. 단에 시신들을 가지런히 눕히고 감은 눈에 저승에서 쓸 노잣돈을 얻은 후 태우는 모습은 우리네 장례 의식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 휴식기

하얀 골격이 수평으로 누워있었지

피도 살도 다 내 준 마른 꽃잎 위로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평화로운 날들이 불어왔어

떨어져 나간 팔 관절과 다리가 바람에 흩어지고

박음질 된 시간이 침묵의 열매를 맺고 있었어

사라지는 것으로 존재했음을 증명하는 게 죽음이지

나는 초록 머리 날리며 너의 영혼이 나는 것을 보고 있었지

-김나비 「죽음의 한 살이」 일부

그녀는 묻는다. "나는 포로인가요?" 아킬레스는 답한다. "너는 손님이야. 언제든지 떠날 수 있지." 빗발치는 불화살과 불덩이 공 위로 쌓이는 파도 소리 그리고 그들의 사랑이 가슴을 파고든다. 아킬레스는 죽는 마지막 순간에 브리세이스의 품에 안겨 말한다.

"피로 얼룩진 내 삶에 너는 평화를 주었어." 그 아비규환 속에서도 그는 뜨겁게 사랑했고 평화를 느꼈던 것이다. 단에 올려진 아킬레스의 눈에 동전이 올려지고 불 속에 휩싸인 그가 행복해 보인다.

드디어 오늘 오 년 만에 영화 한 편을 다 보았다. 여운이 내내 떠나지 않을 것 같다. 죽음이 있기에 아름다운 우리의 삶을 되돌아본다.
이 기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관련어 선택

관련기사

배너
배너
배너

랭킹 뉴스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매거진 in 충북

thumbnail 308*171

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임병렬 청주지방법원장

◇청주지방법원장으로 취임한 지 2개월이 지났다. 취임 소감은? "김명수 대법원장 취임 이후 2019년도에 법원 최초로 법원장 후보 추천제도가 시행돼 올해 전국 법원을 대상으로 확대됐다. 청주지방법원에서는 처음으로 법원장 추천제도에 의해 법원장으로 보임됐다. 과거 어느 때보다도 법원장으로서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또 2018년 법관 정기 인사에 의해 청주지방법원과 첫 인연을 맺게 된 것을 계기로 쾌적한 근무환경과 친절한 법원 분위기, 도민들의 높은 준법정신 등으로 인해 20여 년간의 법관 생활 중 가장 훌륭한 법원이라고 느껴 이곳에서 법관 생활을 이어나가고 싶은 마음이 컸다. 때마침 대법원에서 시행하는 '장기근무법관 지원제'가 있었고, 청주지방법원 장기근무 법관으로 지원·선정돼 6년째 청주지방법원에 근무하고 있다. 평소 애착을 느꼈던 청주지방법원의 법원장으로 취임하게 돼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한다." ◇ 올해 중점 추진하는 사업은? "첫째로 좋은 재판을 위한 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겠다. 좋은 재판은 투명하고 공정한 재판절차를 거쳐 당사자에게 공평한 기회를 주고 결과에 승복하게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법관 언행 개선과 법원 직원의 의식개선, 법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