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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숙

수필가,원봉초등학교병설유교사

 그가 마취약에 취해서 아직 현실로 건너오지 못하고 있다. 수술을 마치고 깊은 잠에 빠져있다. 2시간째 회복실에는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는다. 그의 시간은 정지해 있다. 나는 병원 유리벽에 놓인 의자에 앉아 책을 보다 그가 늘어져 있는 회복실을 보다를 수없이 반복한다. 창밖의 햇살이 긴 팔을 뻗어 근심어린 내 얼굴을 쓰다듬는다. 유리벽 밖 두껍게 쌓인 눈 위로 빨간 장화 신은 비둘기가 날아와 앉는다. 비둘기는 종종걸음을 치며 눈을 쪼아 먹고 있다. 눈 위에 발자국을 찍으며 홀로 걷는 비둘기는 무엇을 쪼는 걸까. 눈을 먹는 것일까 눈 속에 박힌 무엇을 먹는 것일까. 아무리 봐도 흰 눈만 가득하다. 노랗다 못해 주황빛에 가까운 눈알을 굴리며 내 시야에서 멀어졌는가 하면 또 가까워지기를 반복하더니 어느 순간 사라진다.

 사라진 비둘기를 찾다가 눈 위를 본다. 수많은 사람들의 발자국 들이 어지럽게 찍혀있다. 발은 간데없고 발이 놓아버린 발의 흔적만 눈 위에 즐비하다. 사선 모양, 지그재그 모양, 동그라미 모양 등 다양한 모양의 발 도장을 찔러 놓고 사라졌다. 유리창 밖의 세상은 소리가 모두 증발했다. 나는 귀를 잘라 어디론가 유배시킨 느낌으로 창밖 세상을 본다. 소리가 휘발돼 있는 세상은 더 세밀하게 내 눈 속을 파고든다. 저만치 신호등 앞에 서 있는 노란 옷을 입은 여자가 얼룩말의 등 같은 횡단보도를 밟으며 걸어온다. 문 앞에 단풍나무는 바짝 말라버린 잎을 달고 바람에 파들거리고 있다. 신호등 앞 건물에는 현수막이 바람을 마시며 몸을 부풀였다 줄였다를 반복하고 있다. 현수막 뒤의 하늘에는 구름이 흩어질 듯 말 듯 몰려다니며 흐르고 있다. 마치 불안한 나처럼.

 드디어 간호사가 그를 안고 나온다. 아직 마취기가 남아 있는 듯 축 늘어져 있다. 간호사에게 주의 사항을 듣고 그를 안아 집으로 왔다. 집에 돌아와서도 그는 일어서지 못한다. 일어서려고 몸을 일으키지만 다리에 힘을 주지 못하고 미끄러진다. 그렇게 두 시간이 또 흘렀다. 꿀꿀이가 비틀거리며 걷기 시작한다. 이제야 가슴을 쓸어내린다. 침대 위에 전기장판을 켜주고 나도 옆에 누웠다. 내 팔을 베고 엎드려 있는 꿀꿀이의 머리며 등이며 온몸을 쓸어준다. 그리고 혼잣말을 한다. "수고했다. 다행이다. 깨어나 줘서. 고맙다."

 집에서 키우기로 결정을 하고 점점 자라는 꿀꿀이를 보며 내 자식을 보는 것처럼 뿌듯했다. 그러나 거세어지는 꿀꿀이의 포악함과 고약한 냄새에 혀를 내두르는 가족들을 보며 머릿속이 복잡했따. 시골로 보내라는 말에 수도 없이 고민을 했다. 그러나 나에게 인연이 돼 들어 온 생명을 내 편의에 맞지 않는 다고 다시 내친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꿀꿀이는 그렇게 내내 무거운 안개처럼 가슴 바닥에 가라앉아 있었다. 지인에게 물어보고 인터넷을 검색하기를 여러 날. 중성화 수술을 하면 공격성이 줄어든다고 했다.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것 같아 마음이 찝찝했지만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 살기위해 결정을 내렸다. 동물병원을 수소문했다. 돼지가 아직 반려용으로 일반화 되지 않았기 때문에 수술을 하는 곳이 없었다. 충북대 수의대에 까지 전화를 넣어 봤으나 할 수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서울로 가야한다고 한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강아지들이 다니는 동물병원에 전화를 한 번 더 넣었다. 선생님께 부탁을 했다. 돼지도 중성화 수술을 해 줄 수는 없냐고. 한 번도 돼지는 수술해 본 적이 없으니 이틀만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의사선생님의 말에 수화기를 놓았다. 이틀 후 전화를 했다. 의사선생님은 한 달 뒤에 수술을 하자고 했다. 그동안 자기가 공부를 해 보겠노라고.

 그리고 수술이 시작됐다. 꿀꿀이는 다행히 깨어나서 걷고 있다. 고맙다. 병원 의사선생님께도, 조언을 해 줬다는 동물원에 근무한다는 친구 수의사 선생님도. 잘 깨어나 준 우리 꿀꿀이도. 나에게 우연이든 필연이든 다가온 생명들에게 최선을 다하며 살리라 다짐한다. 꿀꿀이의 뻣뻣한 털이 손바닥에 수북하게 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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