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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비

시인·주성초등학교 병설유 교사

이기적으로 살기로 했다. 오직 나만을 생각하며. 그동안 가족들 뒷바라지에, 직장 일에 얼마나 많은 날을 쉬지 않고 달려왔던가. 나를 위한 시간은 늘 뒤로 뒤로 미뤄놓다 보니, 내가 누구인지 왜 사는지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올여름은 나 혼자 먹고 나 혼자 자고 나 혼자 나를 만나고 나 혼자 산책하고 나 혼자 책을 보기로 했다.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며 나를 뒤적여 볼 생각이다. 혼자라는 것은 얼마나 호젓할까. 나를 아는 이 아무도 없는 곳에서 나를 찾아가는 일, 생각만 해도 두근거렸다.

다섯 시간을 달려 도착한 그곳엔 바람이 먼저 와 기다리고 있었다. 내비게이션상으로는 네 시간 이십 분이 찍혔었다. 하지만 워낙 공간지각력이 떨어지고 길치인 나는 길을 잘못 들어 헤매기를 몇 차례 반복했다. 그러다 보니 예상 시간보다 무려 사십 분 늦게 당도했다. 차에서 내린 나를 처음 맞아준 것은 바닷바람이었다. 두 팔 벌려 반기는 바람의 환대에 한참을 품에 안겨 죽림리 해변에 서 있었다. 미역처럼 길게 펼쳐진 해안도로에 파도 소리가 몰려왔다. 멀리 수평선이 밑줄처럼 그어진 곳엔 갈매기들이 춤추고 있었다.

방을 배정받고 짐을 풀었다. 폐교 옆에 딸린 부속 건물이었다. 폐교는 시화박물관으로 탈바꿈되었고, 관사로 사용하던 곳은 작가들이 머물 공간으로 정비되어 있었다. 세월의 흔적이 묻어있는 아담한 숙소였다. 무수히 많은 선생님들이 이곳에서 아이들에게 꿈을 심어주려 고심했으리라. 여자 숙소 현관문을 밀고 들어가니 주방 하나 작은 화장실 하나 그리고 방 두 개가 입구를 마주 보고 있었다. 옆 방은 평론가가 기거한다고 했다. 그런데 나는 방 열쇠가 없는 방이었다. 얼마 전까지 있었으나 어느 순간 사라졌다고 했다. 내가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인 걸 어찌 알았을까. 나는 열쇠 같은 건 없어도 상관없다고 했다. 수중에 책과 노트북밖에 없으니 누가 와서 가져가기는커녕 보태주고 가고 싶을 거라고 웃어주었다. 안으로는 잠글 수 있다고 하니 다행이다. 잠잘 때만 잠글 수 있다면 괜찮을 성싶었다.

짐을 풀고 바닷가로 나가기로 했다. 신참인 내게 공주에서 오신 평론가님이 함께 걸으며 이것저것 알려주기로 했다. 케리어에 있는 짐을 대충 꺼내놓고 바다로 갔다. 갯벌이 허리를 드러내고 있었다. 미역과 청각이 떠밀려와 있고 꼬시래기가 여기저기 돌에 붙어 있었다. 마냥 신기했다. 내륙에 둘러쌓인 청주에서는 물이라고는 무심천이나 명암저수지만 보다가 먹거리가 넘실거리는 살아있는 바다를 보니 가슴이 쿵쾅거렸다. 미역을 줍고 청각을 줍고 꼬시래기를 주웠다. 열심히 줍는 내게 그녀가 입을 열었다. 첫날이라 그렇지 좀 지나 보면 줍는 것도 시들해질 것이라고. 그녀는 여고 교사를 하다 퇴직 후 몇 달째 이곳에 머무르면서 청탁받은 서평을 쓰고 있다고 했다. 그녀의 말에 어느 정도 공감하며 열심히 바다가 토해낸 해초를 주웠다.

꼬시래기를 데쳐서 새콤달콤하게 무쳤다. 바다의 향기가 입안 가득 퍼졌다. 혼자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우고 방에 들어가 노트북을 켰다. 한 달간 머무르며 내가 해야 할 일을 적었다. 그리고 간간이 가 보아야 곳을 떠올렸다. 머리털 나고 처음 온 곳이고 언제 또다시 올지 장담할 수 없는 곳이기에 하루하루가 소중하다. 가는 곳마다 다 눈에 담아야 한다. 팽목항, 울돌목, 소치기념관, 신비의 바닷길 등을 목록에 넣었다. 그리고 읽어야 할 책과 써야 할 글들의 목록을 작성했다. 계획한다고 다 실천하는 것은 아니지만 계획이 있어야 길을 잃지 않을 것을 알기에. 이 계획 중 반 만 실천을 하고 돌아가도 올여름 진도는 내 기억의 필름에 아름다운 고장으로 기록될 것이다. 창백한 푸른 점(*칼 세이건의 책 제목) 지구에서 개미처럼 홀로 떠돌고 있는 나는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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