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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비

시인, 주성초등학교병설유교사

싸늘한 아침, 소파에 앉아 창밖을 본다. 까치 한 마리가 208동과 209동 사이 허공을 그으며 날아가고 동남지구가 흐릿한 시야에 잡힌다. 산의 붉은 속살이 파헤쳐지던 때가 얼마 전인 것 같은데, 어느새 아파트가 여기저기 몸을 만들어 가고 있다. 거실 테이블 위에는 '지옥에서 보낸 한철'이 황달 걸린 사람의 눈 같은 표지를 입고 있다. "미세먼지를 많이 쐬면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높아진다는군요."라는 앵커의 목소리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온다. 미세먼지 탓일까. 갑자기 슬픔이 뿌옇게 몰려든다. 아침이면 일어나 습관처럼 출근하고 저녁이면 아무렇지 않은 듯 집으로 돌아오는 나. 나는 누구인가. 랭보는'나는 타자'라고 했다. 프랑스 상징주의를 대표하는 시인인 랭보. 보들레르가 '파리의 우울'에서 보여주었던 프랑스의 뒷골목과는 다른 빛깔의 프랑스와 유럽을 보여주었던 랭보. 그는 철저히 시대의 반항아였으며 방랑자였으며 광기에 휩싸인 시인이었다.

목차를 훑어본다. 매혹적인 제목들(나쁜 피, 지옥에서 보낸 한철, 취한 배)이 나를 당긴다. 책장을 넘기며 랭보의 거침없던 삶을 본다. 제국주의가 난무하던 시대, 백인들의 횡포와 당시의 사회상을 담은 시들은 소외된 자의 아픔을 육화해서 그려냈다. 시대를 조롱하는 듯한 어린 시인의 모습이 곳곳에서 느껴진다. 짧지만 강렬하게 살다간 그의 삶의 여정을 읽으며 시인의 삶이란 어떤 것인가 되돌아본다.

여덟 살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고 방황의 나날을 보내며 가출을 거듭했던 천재 랭보. 1854년에 태어나 1891년 생을 마감한 시인. 상투적인 삶이 아니라 새로움을 추구하며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랭보. 베를렌과의 동성연애를 하며 마약과 술 등 방탕한 생활을 했던 랭보. 그리고 온갖 곳(네델란드, 인도네시아. 북아프리카. 영국, 벨기에)에 발을 디디며 살았던 랭보. 그의 삶은 그의 시 제목처럼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이었을까. 신선한 충격을 준 그의 시들을 들여다본다. 글자를 색깔로 재해석하여 명명한 모음과 착란이라는 시가 내 눈을 머물게 한다.

모음이라는 시는 동성애의 대상인 시인 베를렌에게 보낸 편지에 있었다고 한다. 누구도 생각할 수 없는 그 만의 시각이다. 감각의 착란이며 언어의 뒤틀림이며 견자의 시각이다. 1871년 당시 이런 획기적인 시를 쓰다니. 지금 보아도 파격적이다. 그리고 착란이라는 시에도 다시 한번 모음의 색깔이 나온다.

검은 A, 흰 E, 붉은 I, 푸른 U, 파란 O: 모음들이여,

언젠가는 너희들의 보이지 않는 탄생을 말하리라 (모음)

나는 모음들의 색깔을 발명했다! A는 검고, E는 하얗고, I는 붉고, O는 파랗고, U는 푸르다. 나는 각 자음의 형태와 운동을 조절했고, 그래서 본능적인 리듬으로, 언젠가는 온갖 감각에 전부 다다를 수 있는 시의 언어를 창조하리라 자부했다. (착란Ⅱ)

남들이 보지 않는 방식으로 세상을 보았고, 남들이 할 수 없는 방식으로 세상을 살았던 랭보. 그의 시는 철저히 계산되고 조직화한 것이다. 모음이라는 시에서 알파와 오메가를 고려하여 A를 맨 앞에 그리고 O를 맨 끝에 넣어 처음과 끝을 상징했다. 즉 A,E,I.O,U 가 아니라 A,E,I,UO,로 계산된 배열을 한 것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인 지금에 보아도 촌스럽지 않고 현대적으로 느껴진다. 그렇기에 요즘 시인들이 랭보를 은근히 따라 하는 것이 아닐까. '상처 없는 영혼이 어디 있으랴''나쁜 피'등 그의 시에서 나온 말들이 아닌가. 그의 거침없는 행보와 폭발적인 광기가 부럽다. 나는 누구인가. 왜 이 작은 지구별에서 머뭇거리며 살아가고 있는가. 목적도 없이 흐린 시간 속을 미세 먼지처럼 떠도는 나는 무슨 색깔일까. "시인이 되려면 먼저 자기 자신을 완전히 알아야 해"라는 랭보의 말을 떠올리며 나는 누구인가를 되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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