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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비

시인, 한천초등학교병설유 교사

빗소리가 기억을 몰고 온다. 유행가 가사처럼 비가 오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내 유년의 빗속을 함께 걸어주던 K. K를 만나고 온 지도 벌써 열 달이 되어 간다. 지난 1월에 강남센트럴씨티 터미널에서 본 것이 마지막이다. 5년 만의 만남이었다. 나는 K에게 향수를 선물했고, K는 내게 클렌징폼을 주었다. 가뭄에 콩 나듯이 만나는 사이지만 언제나 밝게 웃는 K의 모습은 나를 환하게 만들었다. 초등학교 시절, 예고 없이 비가 오는 날이면 K와 나는 비를 맞으며 하교를 하곤 했다. 낭만이나 놀이 때문은 아니었다. 당시 다른 아이들은 엄마가 우산을 갖고 학교 현관에 와서 기다렸지만, 나와 K는 누구도 오지 않았다. 나는 7남매 중 하나인 작은 계집아이였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엄마가 내게 우산을 가져올 거라는 것은 애당초 기대도 안 했다. 그것이 원망스럽지는 않았다. 다만 조금 창피했다. 그나마 나와 같은 처지의 K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K의 엄마는 허리를 다쳐 일어나지 못하는, 아픈 아버지를 대신해서 장사를 한다고 했다. 그래서 느닷없이 비가 와도 올 수 없다고 했다. 우리는 양손에 운동화를 벗어들고 도로를 찰방찰방 걸었다. 세차게 빗줄기가 내릴 때면, 남의 집 처마 밑에서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비를 피하기도 했다.

소리는 기억을 두드리는 징검다리

흔들리는 창문 사이로 빗소리가 건너오면

속울음 빗장뼈 풀어 지난날을 끌고 온다

먹구름 등에 지고 걸어온 비탈길에

겹겹이 엉키는 애처로운 걸음들은

바닥에 부서져서야 일어서는 눈물 소리

절름거리던 시간만큼 소리가 쌓여간다

얼마나 울음을 풀어내야 길이 보일까

번지는 물무늬마다 햇살 몇 되 박혀있다

─ 김나비, 「빗소리 현상학」전문 (정형시학. 2022. 봄호)

빗소리가 K를 몰고 온다. K는 내게 말하곤 한다. 유년의 몇 안 되는 즐거운 기억 중에 내가 들어있다고. K는 지금 강남의 한 초등학교 특수교사로 근무하고 있다. K는 지금쯤 빗소리를 들으며 무엇을 하고 있을까. 공문을 하고 있을까. 아니면 내일 수업 준비를 하고 있을까. 어쩌면 학부모와 상담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K의 앞날에 맑은 햇살만 가득하길, 빗소리를 들으며 손을 모아본다. 도란도란 속삭이던 K의 목소리가 비를 타고 귓속으로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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