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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비

수필가,원봉초등학교병설유교사

그가 성큼성큼 산으로 걸어간다. 한 손엔 낫과 갈퀴를 들고, 한 손엔 예초기를 들었다. 목엔 흰 수건을 두르고, 챙에 검은 그물망이 달려있어서 햇빛을 가릴 수 있는 모자를 섰다. 긴 남색 장화를 신고 헐렁한 작업복 바지를 입고 장갑을 낀 뒷모습이 제법 일꾼 같다. 나는 배낭에 생수 한 병과 시집을 챙겨 넣는다. 작은 돗자리를 들고 그의 발소리를 밟으며 뒤따라간다. 강아지 철이도 종종거리며 나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한다. 그는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어머니 손에서 자랐다. 나는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시아버지 산소에 가는 중이다.

산의 다리를 밟고 한 걸음 한 걸음 들어선다. 곳곳에 찌릿한 기계음 소리가 울려 퍼진다. 명절은 명절인가 보다. 우리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조상의 묘에 와서 벌초를 하고 있다. 예초기 소리가 마치 돌림 노래를 하듯, 여기저기서 산의 푸른 털을 자르고 있다. 기계 소리가 잠시 멈춘 사이 풀벌레 노랫소리가 귓가에 소근 댄다. 어서 오라고. 이제 여름이 지고 있다고. 가을이 저만치 손짓하고 있다고. 마지막 목소리를 끌어올리는 듯 푸르게 속삭인다.

산허리를 깔고 앉았다. 아카시 나무가 곳곳에 발을 묻고 흔들리고 있다. 아직 설익은 가을이 여름을 기웃거리는 한낮, 벌초하는 그를 보며 나는 나무 그늘에서 조용히 책을 편다. 철이와 나는 일이 끝나기를 기다리며 그늘에서 시간을 말릴 작정이다. 그는 예초기로 지난 계절을 잘라낸다. 잘린 목숨의 꼬리들이 초록을 머금고 던져진다. 무덤 위에 솟은 작은 상수리나무가 잘리고, 무덤가에 아기 굴참나무가 잘린다. 무덤을 뒤덮은 무성하던 풀과 나무들이 잘리자 석물이 드러난다. 그는 묵묵히 자른 풀들을 갈퀴로 긁어모으며 지나간 무수한 날들을 담는다. 상단이 드러나고 훤해지는 산소. 그 위를 매미의 노랫소리가 시원하게 떠다닌다.

과거의 사람이 누워있는 곳에서 현재를 깔고 앉아 미래를 펼쳐보는 내 옆에, 철이가 그윽하게 눈을 감고 있다. 멀리 뵈는 마을이 아득히 눈 아래 펼쳐진다. 그런 내가 얄미웠을까. 무엇인가가 내 몸 여기저기를 물어 댄다. 산모기다. 고 작은 것이 몸에 내려앉아 침을 놓고 있다. 불과 이십 분 정도 그늘에서 몸을 식히고 있었을 뿐인데, 몸 곳곳이 불어나 있다. 볼록 튀어나온 곳을 벅벅 긁으며 침을 바른다. 세어보니, 십여 군데나 물어놓았다. 그 작은 생명도 나의 행태가 보기 싫었나 보다. 조상의 묘에 와서 그늘에만 있는 모습이 참 볼썽사납기도 했을 것이다. 괜스레 죄책감이 몰려든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좀 전까지만 해도 즐거이 노래 부르던 매매의 울음소리도 바뀌었다. 질책이 섞인 매미 소리가 귓전을 떠다닌다. 미미미 미워미워 미~~, 미미미 미워미워 미~~ 하며 소리치는 것 같다. 그렇게 앉아만 있지 말고 어서 같이하라는 것처럼 들린다. 책을 덮고 묘 쪽으로 내려간다. 잘라놓은 풀을 갈퀴로 긁어모은다. 그런 나를 보며 남편은 어쩐 일이냐며 웃는다. 도와야 빨리 끝나지 라고 말하며 나는 슬쩍 웃어준다. 갈퀴로 풀을 모으는 일도 쉬운 일은 아니다. 풀을 끌어모으느라 힘이 들어간 팔이 제법 아팠다.

일을 마치고 배낭에서 생수를 꺼내서 나누어 마신다. 말없이 물을 마시는 그의 모습에서, 아버지의 빈자리로 인해 힘들었을 시간이 설핏 스친다. 짠한 마음이 햇살을 타고 가슴을 찌른다. 조상이 없었으면 어찌 우리가 이 땅에 발을 붙이고 살 수 있었으랴. 또 조상이 없었다면 어찌 내가 이 사람과 같은 시간을 공유하며 살 수 있었으랴. 명절만이라도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살아야겠다.

산을 내려오는데 시원한 바람이 머릿결을 어루만져 준다. 멀리서 매미도 마치 우리를 배웅하는 양 가가가 가아가아 가~ 가가가 가아가아 가~하고 우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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