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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비

시인, 주성초등학교병설유교사

살아간다는 것은 역설이라 했던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우연과 혼돈의 연속이라 했던가. 뫼비우스 띠처럼 끝없이 반복되는, 시간의 프랙탈 속을 헤매는 것이 인생 아닐까.

그의 몸속으로 들어간다. 살은 딱딱하고 온통 순백이다. 시 모임인데 지금은 6시다. 시간의 여유는 주변을 둘러 볼 마음의 여유를 준다. 그의 온몸을 샅샅이 눈으로 더듬는다. 옆구리에는 온풍기가 한숨같은 바람을 토해내고 있다. 명치에 걸린 시계는 다섯시 이십분에 멈춰있다. 늑골에는 마틸다 메이와 제라르드 다몽이 청춘으로 갇혀 나를 보고 있다. 우연히 카페에서 마주친 영화 포스터에서 마틸다 메이를 본다. 그녀의 눈동자는 2시 방향으로 새침하게 가 있고, 굳게 다문 입술은 도도해 보인다. 작은 귀걸이가 귓불에 반짝이고, 링 모양의 펜던트가 목에서 동그라미를 그리고 있다. 검은색 재킷을 걸치고 있는 그녀 뒤로 황혼이 황사처럼 몰려들고 있다.

빛이 시들해져가는 11월 저녁, 루멘이라는 카페 불빛으로 다시 그녀를 만나게 될 줄이야. 그녀가 나왔던 영화 달과 꼭지를 생각하며 손을 커피잔 쪽으로 뻗었다. 그녀의 기에 눌린 탓일까. 잔을 쥔다는 게 잔을 눕히고 말았다. 갈색 액체가 테이블 위로 흘러넘치더니 이내 바닥으로 낙하한다. 고요가 몸을 불리던 곳에 돌연 찾아온 소란에도 그녀는 여전히 도도한 표정으로 당황하는 나를 보고 있다. 영화 속, 빨간 셔츠를 입고 인간 탑을 쌓던 사람들. 그들이 와르르 무너져 땅으로 떨어지는 모습이 퍼뜩 뇌리를 스친다. 하늘 높이 쌓아 올린 인간 탑이 쏟아져 내릴 때의 긴장감과 정상을 눈앞에 둔 소년의 두려움에 젖은 눈빛이 생생히 살아난다.

1996년에 개봉되었던 스페인 영화 달과 꼭지. 떼떼는 남동생의 탄생으로 인해 가족들의 관심 순위에서 밀려난다. 소외된 그는 자신의 존재에 대한 물음과 방황을 시작한다. 엄마 품은 이미 동생의 것이고 모두 동생에게만 시선을 집중한다. 자신도 아직 관심과 보호를 받아야 하는 어린아이인데, 갑작스레 변화된 주변의 상황에 얼마나 당혹스러웠을까. 소년은 달을 보며 기도한다. 자신만의 가슴을 찾게 해달라고. 즉 자신이 의지하고 위로받을 수 있는 존재를 찾는 것이리라. 그리고 어느 날 에스트렐리타 역을 맡은 마틸다 메이를 보게 되어 그녀를 따른다. 그녀는 눈물을 좋아해서 작은 병에 눈물을 모은다. 눈물을 모으다니 참 독특한 발상이다. 그녀의 남편은 모리스라는 프랑스인으로 설정된다. 카바파크 쇼에서 방귀 쇼를 하는 인물로 제라르드 다몽이 연기한다. 그녀는 남편의 방귀와 발 냄새에 집착한다. 그리고 그녀를 연모하는 또 다른 청년 미겔이 등장한다. 한 여인을 두고 벌이는 세 남자의 미묘한 감정들이 코믹하게 그려진다. 미겔의 눈물에 감동한 그녀는 미겔과 사랑을 나눈다. 그런 관계를 알게 된 남편도 결국 그들을 용인한다. 지극히 동양적인 사고를 하는 내 정서로는 참 이해하긴 힘든 부분이었다. 결국 셋은 같은 공연팀으로 활동을 하게 된다."슈투트가르트의 여왕 에스트렐리타, 방귀 맨 모리스, 전기가 일어나는 천사의 목소리 미겔! 환상의 트리오에 박수를!"이라는 멘트와 함께 셋의 공연이 이루어지며 화합하는 해피앤딩의 영화다. 어찌 보면 떼떼의 성장 영화로 아이의 눈으로 본 어른들의 세상을 그린 영화다. 자칫 저속하게 보일 수도 있는 상황을 순수한 시각으로 그려내어 신선한 느낌을 주었다.

눈물을 사랑하던 그녀가 내 앞에서 도도한 눈빛을 흘리고 있다. 그 빛에 찔려 잠시 손이 떨렸다. 이런 곳에서 그녀와 마주치다니. 쏟아진 커피를 닦고 우연과 빛 그리고 시간과 영화에 대한 상념에 젖어있는데 책읽기 모임의 친구들이 들이닥쳤다. 얼른 상념을 주워 담으며 책을 폈다. 인생은 어쩌면 아이러니한 영화 같은, 우연의 심연을 헤매는 것이 아닐까. 오늘, 우연 속에 만난 그녀가 불빛처럼 나를 당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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