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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비

수필가,원봉초등학교병설유교사

다리도 없는 빗줄기가 땅으로 달려온다. 얼마나 먼 길을 걸어 온 건지. 얼마나 힘든 길이었기에 장대 같은 소리를 내며 흐느끼는지. 하늘과 땅으로 달리고 있는 비가 커튼처럼 허공의 몸을 가린다. 창밖에 서 있는 소나무가 가물거린다. 타탁이며 전력질주를 하는 빗소리는 세상의 소리도 가물거리게 한다. 모든 것이 아득하다. 세상이 뿌옇게 지워지고 오로지 빗소리와 나만 남는다. 소리 속에 침잠해 이런저런 상념의 실타래를 푼다.

삶과 죽음, 움직임과 멈춤, 충만과 결핍 사이에서 늘 서성이고 있는 나. 오늘 새벽, 빗줄기에 시선을 걸며, 내게 주어진 하루를 머릿속에 굴려 본다. 내일만 사는 사람은 오늘만 사는 사람에게 진다고 했던가. 나의 오늘은 움직임과 멈춤 사이에 출렁이는 시간이길. 관성에 끌려 이리저리 흩날리질 않기를. 상투적으로 하루 속을 걸으며 녹슬지 않기를. 좀 더 깊어지기를.

깊어지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이 파야 하는지, 얼마나 파야 융숭한 우물처럼 깊어질 수 있는지. 예리해지기 위해서 얼마나 많이 갈고 닦아야 하는지, 얼마나 갈고 닦아야 칼날 같은 섬세한 감각을 가질 수 있는지. 쨍한 여름을 맞이하기 위해 허공은 얼마나 많은 비를 견뎌야 하는지.

멍하니 빗줄기를 바라보고 있는데 알람이 울린다. 빨리 차를 타야 한다고. 비 때문에 좀 더 서둘러야 한다고. 반복되는 시간의 프랙탈 속을 거닐어도, 오늘을 뛰어넘을 수 있는 날 들을 만들려면 정신 차리라고. 머릿속 가득 들어찬 쓸데없는 상념들을 털고 배낭을 둘러멘다. 타일들이 조직적으로 나를 쳐다보는 긴 복도를 통과해 엘리베이터를 탄다. 마스크를 쓴 채 눈만 껌벅이며 사람들에게 인사를 한다. 아뿔싸 우산을 안 갖고 나왔다. 빗속을 뛴다. 빗줄기가 살 속을 파고들며 제 몸을 터뜨린다. 비의 몸을 내 살에 바르며 차가운 비의 심장을 느낀다. 차키를 누른다. 간밤에 세워두었던 차의 위치를 찾는다. 여기도 저기도 없다. 아~ 지하 주차장에 넣고 왔구나. 다시 비를 뚫고 지하로 향한다. 안쪽 구석에서 차가 빨간 눈을 빛내며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홍도에 가기로 했다. 일상에서 한 걸음 떨어져 나를 보기로 했다. 그런데 이 빗줄기가 그 섬에까지 이어질지 아닐지. 떠나야 하는지 남아야 하는지 수없이 고민하다 그냥 떠나기로 했다. 비가 오면 비를 맞고 그냥 걸으면 그뿐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떠다녔다. 내 차는 적당한 곳에 주차하고, 은순 언니와 목포행 버스를 탄다. 4시간을 달려 도착한 목포, 다행히 목포는 흐리긴 하지만 비는 안 온다. 배를 타기 위해 여객터미널로 향하는데 문득 내 시선을 잡는 가게가 있다. '나타샤와 당나귀'라는 간판을 건 카페다. 백석 시인의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차용한 간판이리라. 백석의 흔적을 예기치 않은 곳에서 발견하다니. 백석을 떠올리면 자야와 법정스님 그리고 무소유가 자동으로 딸려 온다. 배낭 하나 짊어지고 떠나는 여행에서 만난 카페는 욕심으로 가득한 내 삶을 다시 돌아보게 한다.

차에서 내려 배에 몸을 싣는다. 삼십 분이 지났을까. 파고가 높다. 난 휘청이는 배의 몸속을 더듬더듬 걸어 화장실로 간다. 변기를 잡고 속의 것을 비우기 시작한다. 어질어질 정신이 혼미하다. 모두 게워내고 간신히 좌석을 찾아 앉는다. 미식거리는 속을 누르며 눈을 감는다. 다시 속이 요동친다. 벅벅 기다시피 화장실로 향한다. 쓴물까지 모두 게워내자 눈물방울이 흘러 볼 아래로 미끄럼을 탄다. 다 비우고 나니 시원하다. 스르르 잠 속으로 나를 던진다.

얼마나 잤을까. 언니가 어깨를 흔들어 깨운다. 다닥다닥한 집들이 눈 앞에 펼쳐진다. 홍도다. 햇살이 우리를 반긴다. 이곳에선 머리를 텅 비우고 가리라. 짙푸른 바다처럼 내가 좀 더 깊어지기를 바라며 낯선 섬에 발을 디딘다. 세상일 다 내려놓고 텅 빈 충만을 만끽하리라. 오늘은 오늘만 살리라. 내일은 내일 생각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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