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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비

주성초등학교병설유 교사·시인

제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활주로를 벗어나 검은 하늘 속으로 날개를 펼친 비행기의 굉음이 귓속으로 엎질러진다. 청주가 기체 아래로 점점 멀어진다. 제주를 처음 밟은 건 대학시절이다. 졸업여행 때 난생처음 비행기를 타고 제주에 갔었다. 그때는 넘실거리는 젊음을 싣고 한없이 즐겁기만 한 곳이었다. 그 후 친구들과 때로는 가족들과 제주를 갔지만, 내겐 그저 낭만과 휴양의 섬으로만 기억되었다. 요즘 나는 제주에 대해 다시 알아가고 있다. 내가 알던 휴양과 낭만의 섬이 아닌 붉은 제주의 속살을 엿보고 있다. 밤을 헤치고 아픈 제주를 만나러 간다.

공항에 도착해 셔틀버스를 타고 렌터카 회사로 향한다. 예약한 차를 찾아 충북해양교육원으로 핸들을 돌린다. 곽지해수욕장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방 안에서 밀려오는 밤바다를 보며 지도를 펼친다. 한라산을 중심으로 이번 여행 동안에 가야 할 곳을 메모한다. 제주시 동부권과 서부권을 시작으로 서귀포시 동부권과 서부권을 나눈다. 살필 곳들을 표시한 후 이불을 펴고 고요가 몸을 불리는 방에 눕는다. 어둠의 입자들이 하나 둘 내려와 고요를 덮는다.

햇살이 긴 손가락 뻗어 눈두덩을 간질인다. 창문 열고 알싸한 바람을 들인다. 외승을 나온 듯 곽지 해변의 모래 벌에 말 타는 사람들이 새벽을 가르며 달린다. 활기찬 새벽 풍경을 보며 하루를 시작한다. 운동화 끈을 졸라매고 관덕정을 지나 북촌 너븐숭이를 지나 다시 정뜨르 비행장을 보고 서귀포로 향한다. 가는 길에 진아영 할머니 삶터에 잠시 발을 멈춘다. 정낭 가로지른 대문을 넘어 손바닥 선인장이 가득한 마당으로 들어선다. 무명천 할머니로 더 잘 알려진 그녀가 살았던 조붓한 집. 작은 미닫이 방문을 연다. 조그만 제단 앞에 놓인 두 개의 촛불이 깜박인다. 향을 꼽고 손을 모은다. 문득 고개 드니 실겅 위엔 바구니가 있고 멈춰버린 달력이 빛바랜 채 벽에 걸려 있다. 방바닥에 곱게 개켜진 이불은 할머니의 성품처럼 정갈해 보인다. 빗발치는 총탄에 턱이 날아가 평생을 죽으로 연명하면서도 밝게 사셨다는 할머니. 운명을 관통당한 그녀의 삶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려왔다. 이렇게 작은 집에도 사람이 살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만치 조그만 할머니의 집을 뒤로하고 정방폭포로 향한다.

사스레피나무 서 있는 길을 지나 정방폭포로 들어선다. 깎아지른 절벽 위 소나무는 말이 없는데, 물줄기는 긴 머리 풀고 무엇을 이야기하는 건지 연신 중얼거린다. 깔깔거리는 관광객들의 웃음소리가 폭포 속으로 스미고 나는 폭포 앞 바위에 걸터앉아 하염없이 떨어지는 물줄기를 본다. 굴비처럼 엮여 폭포 아래로 떠밀렸을 사람들을 생각한다. 죽음의 이유도 모르고 죽어야 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어떤 것일까. 죽음보다 더 두려운 건 서서히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라 했던가. 일렬로 세워진 후 총성이 들릴 때마다 수많은 그림자들이 온몸을 엄습했으리라. 붉은 섬으로 낙인찍혀 공포의 나날을 살아야 했던 사람들, 그들의 심정을 눈을 감고 그려본다.

감은 눈두덩 뒤로 그들의 눈물인 듯 차가운 빗방울이 떨어진다. 자리에서 일어나 걷는다. 편의점으로 들어가 숨을 고른다. 편의점 유리문 위로 비가 내린다. 매대에 있는 미역국밥을 골라와 밥을 넣고 물을 넣고 미역을 넣고 액상스프도 넣고 전자레인지에 넣는다. 바다가 훤히 보이는 창가에 앉아 생각에 젖는다. 비 오는 날 홀로 컵밥을 먹는 꼬질꼬질한 내가 이상해 보였는지 아르바이트생이 계속 내 주위를 맴돌며 매대에 컵밥들을 진열하는 척하며 흘끔거린다. 그러거나 말거나 난 창가에 앉아 비를 보며 붉은 섬을 생각한다.

제주의 봄은 참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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