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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비

시인·주성초병설유 교사

어느새 5학년이 되었단다. 어깨를 살짝 덮은 생머리에 뿔테 안경을 쓴 뽀얀 얼굴, 반짝이는 검은 눈과 야무진 입매, 아이가 숙녀티를 내며 내 앞에 나타났다. 아이를 처음 만난 건 7살 때였다. 작은 키에 카랑한 목소리를 가진 아이에게 동화 구연을 지도했다. 오전엔 24명의 아이들과 정신없이 수업하고, 오후엔 밀려드는 공문을 처리하는 와중에 틈을 내어 매일 아이를 가르쳤다. 구연하는 자세, 성량 조절법, 얼굴 표정, 그리고 무대 매너 등을 알려주었다. 아이는 힘든 내색 없이 잘 따라 주었다. 석 달 여를 그렇게 연습한 아이는 충북동화구연대회에서 1등을 해 당당하게 교육감상을 받았다. 그 작고 당차던 작은 아이가 몰라보게 커서 인사를 한다.

한해를 마감하는 12월, 시민과 함께하는 시 낭송회에 학생을 출연시켰으면 좋겠다는 집행부의 제의를 받고 내 머리에 퍼뜩 떠오른 아이였다. 아이의 보호자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는 좋은 경험이 될 거라며 기쁘게 전활 받았다. 그런데 며칠 후 집행부에서 연락이 왔다. 출연하려면 PCR 검사 증명서와 출연자 교육을 받은 이수증을 제출하라는 것이다. 콧속에 면봉을 쑤셔 넣어서 하는 검사가 얼마나 힘든 것인 줄 알기에 멈칫거렸다. 아이에게 큰 무대 경험을 시켜주고 싶은 마음에 추천했는데, 괜히 번거롭게 한 것 같아 망설이다 연락을 취했다. 다행히 엄마는 밝은 목소리로 그리하겠다고 한다.

그리고 이주 후 예술의 전당 공연장에 불이 밝았다. 안전과 방역을 위해 최소한의 인원이 함께한 조촐한 행사였다. 훌쩍 커버린 아이의 모습에 하마터면 못 알아볼 뻔했다. 다만 엄마의 모습이 변하지 않아 엄마를 보며 아이를 단박에 직감할 수 있었다. 아이를 보자 그 시절이 몰려왔다. 수업 후 매일매일 아이와 씨름했던 날들이 필름처럼 스쳐 갔다. 돌아보니 뜨거웠던 내 젊은 날이었다. 아이를 보자마자 "은우구나! 많이 컸네."라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이는 수줍은 듯 미소 지으며 낮은 목소리로 "안녕하세요?"를 했다. 시간이 없으니 리허설을 하자며 난 아이를 데리고 무대로 향했다. 마이크 사용하는 법과 무대에 입장하는 법 그리고 퇴장하는 법, 청중에게 인사하는 법 등을 알려주고 아이에게 해 보라 했다. 아이는 예전의 그 당당하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소금에 절인 배추처럼 시들거렸다. 무대에서 몸을 꼬며 인사하는 모습에 불안감이 밀려들었다. 조명 아래 아이는 한없이 작아 보였다. 인사를 한 아이는 낭송을 하지 않고 머뭇거리며 한동안 불빛 아래 흔들리는 촛불처럼 서 있었다. 아마도 머릿속이 하얗게 됐나 보다. 나는 아이에게 내려오라 한 후 괜찮다고 다독였다. "집에서는 다 암기했었는데 생각이 잘 안 나요." 하며 아이는 울상이 됐다. "긴장했구나. 생각 안 나면 보고하면 돼. 원래는 낭송하는 게 맞지만, 낭독을 해도 괜찮아!"라고 아이를 안심시켰지만, 낭송을 기대했던 내 마음엔 먹장구름이 드리워졌다.

드디어 낭송회가 시작되었다. 여는 무대로 유명한 연극인이 중저음의 목소리로 박인환의 목마와 숙녀를 낭송하고, 하늘거리는 무용수가 그에 맞춰 춤을 추었다. 그리고 시민들이 낭송을 시작했다. 낭랑하고 고운 목소리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시 구절들이 도통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다만 아이가 실수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머릿속을 휘감았다. 드디어 아이의 낭송 시간이다. 나는 무대에 오르는 아이를 보며 콩닥거리는 가슴을 매만졌다. 내가 낭송할 때보다 몇 배는 더 심장 박동이 빨라졌다. 음악이 깔리고 아이가 낭송할 시가 뒷배경에 자막으로 올라갔다. 아이는 인사를 하고 마이크 앞으로 한발 다가섰다. 나는 두 손을 모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아이는 누구보다도 또렷하고 정확한 목소리로 아름답게 시를 낭송했다. 행과 행 사이의 휴지기도 연과 연 사이의 구분도 정확히 지키면서, 시에 감정까지 넣어 낭송하는 게 아닌가. 우레같은 박수가 터져 나오고, 아이는 방긋 웃으며 인사를 하고 내려왔다. 내려온 아이의 등을 토닥여 주었다. 온 세상에 달빛이 쏟아지는 것 같았다.

이렇게 제자가 관중 앞에서 환한 미소를 지으며 당당하게 설 수 있는 모습을 본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내가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는 일을 한다는 것에 다시 한번 감사한다. 앞으로도 아이들 지도에 최선을 다하여, 언제 어디에서도 당당하게 설 수 있는 사람이 되는데 조금이라고 기여할 수 있는 교사가 되길 소망한다. 아이가 커서 자신의 자리에서 제 몫을 하고 살면서 타인에게 조금이라도 휴식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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