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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비

시인, 원봉초등학교병설유교사

무작정 비행기에 나를 실었다. 목적지 이름 외에 아무런 정보도 없었다. 휴양지라는 것 정도는 들어서 알고 있었기에 간편한 원피스 두벌과 샌들 하나만을 배낭에 챙겨 넣었다. 비행기에 탑승하자 '헬로 베트남(hello vietnam)'이라는 노래가 흘러나왔다. 팜 꾸잉 아잉(pham quynh anh)의 애절한 음색이 귓속으로 차곡차곡 떨어져 쌓인다.

공항에 도착해서 그에게 일정표를 보자고 했다. 첫날부터 해발 1,500미터에 이르는 바나산에 가는 일정이 짜여있었다. "미케비치 해변에서 휴양하는 거 아니었어·"라고 뾰족하게 묻자 목소리에 찔린 그의 얼굴이 흙빛이다. "아닌가봐. 주말을 낀 일정만 확인하고 세부사항은 확인 못했어." 평일엔 일이 바쁘기 때문에 토요일과 일요일이 들어간 상품이 있어서 무작정 예약을 했다고 한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여행이 다 있나. 그러나 누굴 탓하랴. 그에게 이번 여행을 일임한 것도 나고 내 선택을 유보하고 그의 선택과 결정에 따른 것도 결국 나의 선택인 것을.

'큰 강의 입구'라는 뜻을 지닌 다낭에는 고대 참족의 유적과 프랑스인들에 의해 만들어진 서구 건축물이 산재되어 있다고 가이드가 설명을 한다. 귀로는 가이드의 말을 담으며. 눈은 창밖으로 던져 스치는 베트남의 시내를 스캔한다. 차는 한강과 용다리를 지나 바나산으로 향한다. 바나산 꼭대기의 도시는 150여 년 전 프랑스인들이 무더운 베트남 날씨를 피하기 위한 휴양지로 개발한 것이 시초라고 한다. 그 후 역사의 흐름 속에서 파괴와 복원을 통해 오늘의 명소로 자리 잡은 것이란다.  

원피스를 입고 샌들을 신고 바나산국립공원에 오른다. 다행이 케이블카로 이동을 한다. 정상부근에서는 골든 브릿지와 프랑스 마을을 돌아보는 일정이 있다. 바나힐에 들어서자 내내 걷는 것 투성이다. 나는 그에게 눈을 흘기며, 마치 모든 것이 그의 탓인 양 쌩쌩 거린다. 그러면서도 이런 산꼭대기에 150 여 년 전 에 이렇게 화려한 건물을 지은 사람들의 위대함에 새삼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변변한 길도 차도 없었을 그 옛날에 지배자인 프랑스인들의 휴양을 위해 온몸으로 노역을 했을 베트남 사람들을 생각하니 가슴 속으로 서늘한 바람이 한 자락 분다. 산 아래는 더웠는데 정상은 파커를 입을 만큼 춥다. 추운 날씨에도 웨딩 쵤영을 하는 사람들이 곳곳에 눈에 들어오면서 이곳이 베트남의 명소임을 깨닫는다.

저녁을 먹고 밤거리로 나선다. 과일가게에서 망고와 두리안을 사서 숙소로 들어온다. 두리안을 먹으며 이번 여정에 대해 생각해 본다. 준비 없이 떠난 여행 속에서 준비 없이 맞은 언덕 위의 성들을 떠올려 본다. 어쩌면 이것이 나의 생의 모습은 아닐까.

내가 나도 모르게 인간이라는 탈을 쓰고 이 세상에 던져진 것처럼 생은 언제나 준비된 대로 살아지는 것은 아니다. 나는 매일 아침, 알 수 없는 햇살에 눈을 뜨며 알 수 없는 바람에 의해 낯선 시간 속에 서성인다. 수 십 년을 사는 동안 어떤 길이 내 앞에 펼쳐질지 알지 못한 채 불안 속에 휩싸여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나 어차피 던져진 인생이고 어차피 떠나온 길이다. 그 낯선 곳에서 만난 낯선 바람을 어떻게 견디고 즐기느냐에 따라 삶의 모양과 빛깔과 질이 달라질 것이다. 이번 여행엔 어떠한 변명의 여지도 없다. 어차피 내 여행이고 내 선택에 의해 내가 책임져야만 하는 시간이니까. 이번 생도 마찬가지다. 나는 지금 내 모습에 어떠한 변명도 회피도 할 수 없다. 내 선택에 의해 내가 만들어온 날들이니까.

'사람은 자신의 삶에 뛰어들어 자신의 모습을 그려내며, 자기가 그려내는 모습 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다.' 라고 한 샤르트르의 말이 비수처럼 가슴을 파고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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