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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숙

시인·주성초병설유 교사

우리나라의 문맹률은 1% 미만으로 제로에 가깝다. 그만큼 교육에 대한 열정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배우고 익히기 쉬운 한글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도로 발달 된 산업화 시대에 새로운 문맹이 생겨나고 있다. 바로 디지털 문맹이다. 문맹으로 산다는 것은 불편한 일이다. 나는 요즘 세상에 나가는 것이 두렵다. 나는 기계 앞에서 청맹과니다.

먼 길을 가야 하는 일이 생겼다. 청주를 벗어날 때는 주로 남편과 함께하는 데 이번에는 남편이 사업상 중요한 다른 일정이 있다고 한다. 먹고사는 것이 중한 일이니, 사업상이라는 말 때문에 혼자 길을 나서기로 했다. 세 시간이 넘게 걸리는 곳이다. 멀기도 하고 언제 또다시 갈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곳이라, 예전에 신세를 졌던 분들도 보고 오기로 한다. 그들에게 과일이라도 사 갈 요량으로 마트에 들른다. 황금 사과를 사서 계산대로 가는데, 계산대가 모두 무인으로 바뀌어 있다. 갑자기 가슴이 콩닥거린다. 어찌해야 하나 어떻게 계산을 무사히 마치고 저 공간을 통과할 수 있을까. 사람들은 다들 척척 터치스크린을 이용해 계산을 잘도 한다. 막막함에 매장을 이리저리 살펴보는데 마지막 칸에 있는 계산원이 눈에 들어온다. 그곳으로 물건을 들고 달려가 계산하고 무사히 마트를 빠져나온다.

4차 산업 시대 빠르게 보급된 키오스크는 페르시아어로 '별장 속 작은 개방형 건축물을 의미하는 쿠슈크(Kushk)'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요즘의 키오스크는 전자가판대를 의미한다. 카페, 식당, 영화관, 공항, 박물관 등 키오스크가 없는 곳이 드물다. 사람보다 빠른 정보처리 능력을 통해 인건비를 절약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나처럼 디지털 문맹들에는 너무 불편한 시스템이다.

과일을 사서 고속도로를 향하는데 기름이 달랑거린다. 걱정이 밀려든다. 고속도로에 진입하기 전에 기름을 넣고 가야 한다. 그런데 주유소 두 군데를 지났으나 모두 무인 시스템이다. 이제 IC까지 주유소는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 그곳은 셀프가 아니길 바라면 속도를 낸다. 그러나 역시 그곳도 무인 시스템이다. 어쩔 수 없이 기름을 넣지 않고 고속도로에 진입한다. 고속도로 휴게소라면 당연히 사람이 있을 것 같다. 기름이 거의 바닥을 보이니 이번에는 무인이건 아니건 선택의 여지 없이 기름을 넣어야 한다. 드디어 도착한 고속도로 안 휴게소, 아뿔싸! 이곳도 무인 서비스지역이다. 어쩔 수 없이 차에서 내려 키오스크 앞으로 다가간다. 손 모양에 정전기 방지 터치를 하고 시스템이 안내하는 대로 유종을 선택한다. 그리고 금액을 입력하고 안내에 따라 주유구를 열고 호수를 꼽으려 하는 순간 기름이 바닥으로 주르르 흐른다. 당황한 나는 가게 안으로 들어가 직원을 불러온다. 호수를 먼저 꼽고 레버를 당겨야 하는데, 호수를 기계에서 들면서 동시에 레버를 당겨서 그렇다고 한다. 직원의 도움으로 겨우 기름을 넣었지만, 옷엔 기름이 묻고 손엔 진땀이 난다.

다시 출발하고 그제야 눈에 가을이 들어온다. 나뭇잎들이 울긋불긋 꽃보다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는 산들이 휙휙 지나간다. 목적지에 도착해서 일을 마치고 다시 청주로 향한다. 가는 도중 뭐든 다 있다는 상점에 들러 가족들 줄 선물을 골라 계산대로 향한다. 그런데 또 한숨이 나온다. 그곳도 터치스크린과 바코드 리더기를 이용한 셀프 계산을 해야 한다. 가게 이름이 다 있어를 연상하게 하는데, 없는 게 있다. 뭐든 다 있는데 계산원은 어디에도 없는 상점이다. 당황한 나는 뚤레뚤레 매장을 둘러본다. 멀리 한 여직원이 있다. 그녀를 불러 겨우 계산을 마치고 고속도로를 탄다. 전주를 지나고 회덕을 지나는데 배가 고프다. 휴게소에 들러 식사할까 말까 고민한다. 그곳도 키오스크로 주문을 할 것이다. 이내 휴게소를 포기한다. 집에서 싸 온 귤과 커피로 허기를 달래며 돌아온다.

짐을 풀고 소파에 누워 한참을 생각한다. 나는 21세기에 어울리지 않는 아날로그형 인간이다. 전자책보다 종이책이 더 좋고 AI 스피커보다 사람의 육성을 더 좋아한다. 그러나 어찌하랴. 급속도로 변화는 세상에서 살아가야 하는 것을. 디지털 문명에 적응해야 한다. 21세기에 걸맞은 스마트한 인간이 되어 키오스크 앞에서도 당당한 사람이 되어야겠다. 가을이 깊어가고 내 고민도 깊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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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