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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비

시인, 주성초병설유치원교사

생명은 자연의 가장 아름다운 발명이라고 했던가. 들깨 단처럼 바짝 마른 손에 맥박 줄을 달고 돌이 되어 누워 있던 영이. 입에는 산소 줄을 끼고 초점 없는 눈은 병원의 하얀 벽을 미동도 없이 응시하고 있었다. "우리 영이 편히 보내주세요."라는 나의 말이 떨어지자 의사는 안락사용 주사액을 주입했다. 검게 늘어진 한밤중에 나는 우주가 깨지는 것을 보았다.

그날 영이는 몸에 힘이 없어 보이긴 했지만, 친정에 다녀온 나를 현관까지 나와 반겨주었다. 그런데 저녁나절부터 영이가 수상했다. 고개를 주억거리며 눈꺼풀이 자꾸 아래로 쏠리고 있었다. 오랫동안 유선종양이 있어서 치료를 받고 다녔지만 그렇게 갑자기 숨을 놓으리라고는 꿈에도 상상해 보지 않았다. 영이가 이상하다고 말하자 아들은 영이를 데리고 병원에 간다고 했다. 저녁 11시가 넘었고 추석 연휴라 다니던 병원이 문을 닫았다. 아들은 검색을 통해 24시간 진료하는 병원을 알아냈고 영이는 힘없이 걸어 나갔다.

그런데 갑자기 아들이 울면서 전화를 해 왔다. 영이가 위독하다고. 피검사를 했고 폐 검사를 했고 호흡이 안 좋아 호스를 끼고 산소 방에 들어가 있는 중이라고. 새벽 두 시였다. 나는 옷을 입고 병원으로 향했다. 영이는 소독약 냄새가 가득 떠다니는 병원의 딱딱한 침대에 누워있었다. 몸에 손을 얹어도, 소리 내어 이름을 불러도 얼음이 되어 아는 체를 하지 않았다. 순간 13년의 세월이 머릿속에서 파노라마처럼 스쳤다. 통곡하는 아들의 슬픔 냄새가 병원 안을 빽빽하게 채웠다.

영이의 눈을 감겨주고 항문과 입을 솜으로 막고 상자에 넣어 집으로 왔다. 단단한 몸을 꺼내 방에 누이고 밤 새 온몸을 쓸어 주었다. 내 눈에 뿌연 물방울이 고이고 목 안에서 신음이 흘러나오는 것을 손 빗장으로 눌렀다. 식탁에는 아침에 주기 위해 불려 놓은 사료가 말캉하게 퍼져있었다. 영이는 이가 안 좋아 사료를 말랑하게 만들어 주었었다. 젤리 간식도 옆에서 분홍색 빛을 흘리고 있었다. 일어나 주섬주섬 영이의 물건을 챙겼다. 털이 붙어 있는 빨간 후드 티와 파란 줄무늬 티, 점 모양이 찍힌 보라색 티. 토끼 그림이 그려진 티, 덮던 이불, 분홍색 목줄, 영이가 좋아하던 뼈다귀 모양 장난감, 그리고 내 전화번호가 새겨진 영이의 목걸이 등 영이의 흔적이 집안 곳곳에 산재해 있었다.

목련 아래 수목장 하기로 했다. 마당 그네 옆에 해마다 하얀 꽃을 터뜨리는 목련이 말없이 서 있었다. 땅을 열고 차갑게 식은 영이를 그 옆에 놓았다. 철이를 불러 마지막 인사를 하라고 했다. 철이는 영이가 저승으로 편입한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영이에게로 와 온몸의 털을 핥으며 떨어질 줄을 몰랐다. 영이를 이불에 싸서 씨앗처럼 땅에 심었다. 그 옆에 장난감과 옷과 사료와 간식 그리고 동전 몇 개를 같이 넣어 주었다. 구덩이에 놓인 이불을 다독거리고 있는데, 그 위로 철이가 들어가 턱 하니 앉아 있었다. 뾰족한 귀를 세우며 동그란 눈망울엔 원망이 맺힌 빛으로 우리를 쳐다봤다. 나오라고 해도 나오지 않았다. 나는 구덩이에 손을 뻗어 철이를 억지로 들어 올렸다. 그리고 영이의 몸 위로 흙을 한 삽 떠 넣고 슬픔도 같이 묻기로 했다. 철이의 낑낑거리는 울음소리가 마당을 적셨다. 그리고 며칠 철이는 밥을 먹지 않았다.

일주일째 우리 집 마당에는 소리 없는 울음이 흐르고 있었다. 영이를 품은 흙을 손으로 만져봤다. 영이의 숨소리가 쿵덕쿵덕 들리는 듯했다. 내년 봄, 영이는 하얀 꽃으로 피어나겠지. 철이도 그때쯤에는 영이를 잊고 잘 지내길. 가을바람이 소슬하게 봉분 위로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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