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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비

수필가, 원봉초병설유치원교사

걱정하지 말라고. 그런 일은 없을 거라고. 내가 늘 당신을 지킬 거라고. 그 말을 해 주지 않은 것이 찬 겨울산에 날리는 싸래기처럼 하얗게 가슴에 쌓인다. 그 말은 해주었더라면 엄마도 나도 마음이 편했을 것을.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는데, 언제 죽을지 기별이 없다고 노래를 하시는 엄마. 이번에도 나를 보자 또 그 말을 흘리신다. 습관처럼 토하는 엄마의 말에, 오래 살아야지 무슨 그런 흉한 소리를 하느냐고 퉁퉁거린다. 85년을 어제로 떠나보낸 엄마는 요즘 부쩍 마음이 흔들리는 것 같다. 다리에 힘도 없고 눈도 안 보이고 입맛도 없어서 무얼 먹어도 맛이 없고 어디를 가도 즐겁지 않다고 하신다. 마음은 여전히 스무 살인데 몸이 말을 안 들으니, 지나온 날 들을 회상하면 서러움만 몰려든다고 하신다. 몸이 예전 같지 않으니 마음이 약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리라.

엄마는 나를 보며 "내가 수족을 못 쓰면 요양원으로 가야 할 텐데 걱정이다."고 입을 여신다. 나는 엄마의 마음도 읽지 못하고 "요양원이 어때서?"라고 대꾸한다. 때맞추어 밥도 챙겨 주고 이야기할 사람들도 많아서 오히려 집에 혼자 있는 것보다 낫지 않겠냐고 눈치 없는 말을 한다. 엄마는 거기는 자유가 없어서 싫으시단다. 집에서는 먹고 싶을 때 먹고 자고 싶을 때 자고 티브이도 마음대로 볼 수 있지만, 거기서는 먹기 싫어도 먹어야 하고 자기 싫어도 불을 끄고 누워있어야 할 것 같단다. 그래도 다들 직장을 나가니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냐고 무심하게 말을 던진다. "그러니까 엄마가 스스로 건강을 챙기고 운동도 열심히 해서 수족 못 쓰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해!"라고 가시 같은 말을 찔러 넣는다. 되돌아 생각하니 먹먹하다. 그게 얼마나 얼음 같은 말이었을지. 얼마나 시리게 엄마 가슴에 박혔을지. 엄마는 위안을 받고 싶어 하셨을 텐데 나는 위안은커녕 현실이 그러니 감수해야 하고 요양원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엄마의 속을 긋고 말았다.

짐을 꾸리는 내게 열무가 연하다고 비닐하우스에 가서 뽑아가라며 손을 이끄는 엄마. 엄마의 팔을 부축해서 열무를 뽑으러 밭에 가는 길, 한 남자가 계절의 풍경 속에 들어온다. 모자를 눌러 쓴 남자가 논에서 삽질을 하고 있다. 엄마는 그를 눈으로 가르키며 표정을 파지처럼 구기신다. "글쎄 저놈이 지 엄마를 요양원에 강제로 입원시켰어 야!" 라고 하신다. 나는 "집에 돌볼 사람이 없었나 봐!"라고 덤덤하게 대답을 한다. "저 낳고 길러준 엄마가 수족을 못 쓰면 지 놈이 돌봐야지!" 엄마는 뾰족한 눈으로 그를 쳐다보며 그가 들을세라 내 귀에 나직이 그러나 분명하게 속삭이신다.

난 그제 서야 엄마의 마음을 읽었고 내가 해야 할 말을 더듬더듬 머릿속에서 찾기 시작한다. 자식이 자신을 버릴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엄마의 가슴속에 들풀처럼 자라고 있었나 보다. 그 생각을 뿌래 채 뽑아줄 내 말 한마디를 엄마는 기대했으리라. 그러나 나는 그 말을 하지 않고 운전석에 앉는다. 돌아오는 길, 토마토처럼 붉게 번지는 하늘 위에 엄마와 보낸 이틀이 텁텁하게 떠다닌다.

어둠이 차창에 서성이고 후회가 저녁 그림자처럼 길어진다. 내가 모실 거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이야기해 줄 것을. 그 한 마디가 뭐가 어려워서 아무 말 없이 돌아왔을까. 전화를 넣어야 겠다. "엄마 요양원에 안 보낼 거니까 걱정하지 마. 만약 오빠가 상황이 안 되면 내가 모실 테니 맘 놔." 엄마의 목소리가 부스스 수화기속에서 피어날 것이다. "언제 죽으려나 기별이 없다." 난 진심을 담아 대답하리라. "엄마 ~ 오래오래 살 거니까 마음 편하게 있어! 자주 보러 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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