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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비

시인, 주성초등학교병설유 교사

누군가를 본다는 것, 자세히 그를 본다는 것, 그것은 관심이고 애정일 것이다. 관심이 없다면 보지 않을 것이며 더군다나 애정이 없다면 자세히 볼 이유가 없다. 로버트 카메룬의 영화 아바타에 나오는 나비족에게는 '사랑한다'는 단어가 없다. 대신 그들은 'I see you'라는 문장으로 그 감정을 대신한다. 1편을 보았을 때 그 문장이 무척 인상 깊었다. 하여 그 문장을 시 강연 할 때 종종 예를 들곤 했다. 시를 쓸 때 사물을 자세히 애정 어린 눈으로 봐야 한다고. 그래야 사물과 내가 하나가 되며 사물의 언어를 읽을 수 있다고. 깊게, 찬찬히, 꼼꼼히, 자세히, 세상을, 주변을 관찰하는 시선. 그것이 곧 사랑의 시선이고 시인의 마음이라고.

얼마 전 아바타 2편을 봤다. 2편은 가족 간의 사랑을 주 테마로 잡고 있다. 이번에도 역시 사랑이라는 단어는 없다. 그들은 서로를 자세히 봄으로써 서로의 애정을 느끼고 교감했다. 2편에서는 제이크 설리가 나비족의 족장이 되어있다. 그는 판도라 행성에서 가족을 이루며 평화로운 나날을 살고 있다. 그러나 그를 다시 찾아온 지구인들이 그들의 터전을 빼앗으려 위협한다. 결혼하지 않은 1편에서 그는 지구인들에게 대항해 용감히 싸웠다. 그러나 2편의 설리는 가족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는 아버지였다. 지구인들에게 대항하기보다 가족을 보호하는 것을 선택한다. 설리는 그들을 피해 물의 나라로 숨는다. 1편의 설리였다면 지구인에게 맞서 목숨을 걸고 싸웠겠지만 가족을 가진 그는 감정을 억제한다. 그것이 세상 모든 부모의 마음일 것이다. 들끓는 감정을 조절하고 자신을 내려놓고 가족의 안위를 위해 참고 또 참아야 하는 시간, 그 인내의 세월을 부모가 되지 않아본 사람은 알 수 없을 것이다. 설리의 모습에서 문득 나의 아버지를 만난다.

강가에 서서

겨울의 조각칼 소리를 듣는다

강물에 입 맞춘 비료 포대 싸늘하게 양각되고

부러진 나뭇가지 강의 팔에 박혀 실핏줄로 상감될 때

숨 놓은 얼음 위에 멈춰진 썰매는

기억 속에 음각된 당신을 데려오고

썰매를 만들어주던 사포 같은 당신 손이 스친다

배추를 갈아엎던 날

강가에 홀로 서서, 하얗게 담배 연기만 피워 올리던 당신

처진 어깨로 말없이 언 강을 바라보며

삶의 무게를 조각하던 아버지

아픔을 얼리기엔 겨울 강이 최고라며

얼지 못한 바람이 귓가에 속삭일 때

백구의 컹컹 짓는 소리가 물에 닿아 얼어 간다

-김나비 시 「겨울 판화」전문

1편이 개봉되고 13년 만에 개봉되었다는 영화는 13년의 간극 만큼이나 화려한 영상미가 돋보였다. 물의 길이라는 제목처럼 물속의 풍경은 황홀하다. 내가 물속을 유영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섬세하고 아름답게 제작된 영상에 인간의 한계는 어디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더 울림을 준 것은 자식을 향한 부모의 사랑을 섬세하게 그려낸 점이다. 보통 인간은 자신의 두뇌를 10% 정도 사용한다고 한다. 그 10%를 사용한 사람 머리에서 이런 환상적이고 애잔한 감정선을 건드리는 작품을 만들어 냈는데, 그 이상을 사용한다면 어떤 작품이 나올까 상상하며 창밖으로 눈을 준다.

부모로서의 무게감과 자식으로서의 죄책감이 밀려오는 겨울밤이다. 53m가 넘는 19층 아파트 베란다에서 한참 동안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검은 창 위로 비치는 내 모습 위로 아버지가 설핏 스친다. 아버지를 그리며 살아생전 한 번도 하지 못했던 사랑한다는 말을 가만가만 되뇌어 본다. "I see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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