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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비

시인·주성초등학교병설유치원 교사

일 년 사이에 두 번을 이사했다. 집을 줄여서 이사한 탓에 버릴 것이 태산처럼 많았다. 소파를 버리고 침대를 버리고, 옷은 거짓말 조금 보태서 한 트럭은 버린 것 같다. 버려야 할 물건 앞에 서서 몇 번씩 들었다 놓기를 반복했다. 아까워서인 것도 있지만 그 내력을 생각하면 차마 버리기가 힘든 것들이 있다. 물건이 소중한 건 그 자체보다 그 안에 있는 내력이 소중한 것이니까. 아들이 첫 아르바이트를 해서 사준 점퍼, 남편이 생일 선물로 사준 책상. 엄마가 손수 십자수를 놓아서 만들어 주신 방석, 대학 은사님이 출판기념회 때 선물로 주신 낡은 만년필 등 많은 물건들이 내 앞에서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들었다 놓기를 반복하면서 며칠간 차마 버리지 못하고 쌓아 두었다. 머릿속에 그것과 관련된 추억들이 계속 떠다니며 나를 들쑤셨다. 그러나 며칠 밤낮을 건너 내린 결론은 '버리자!'였다. 눈을 꼭 감고 입술을 지그시 깨물고 떠나보내기로 했다.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반으로 훅 줄어든 작은 집은 그동안의 추억과 내력과 물건을 모두 감당하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추억과 내력만 남기고 물건은 놓아주기로 했다.

며칠간 집 정리를 하며 오래전 시간 속으로 여행을 떠났다. 때로는 희미한 미소를 짓기도 하고, 때로는 눈물을 찍어내며 과거의 그 날 들을 소환했다. 어느 한순간도 의미가 없는 날들은 없었다. 실컷 그 물건 속에 간직된 추억들과 조우한 뒤, 공간에 맞게 살림을 줄였다. 최소한의 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것들만 남겼다. 미니멀라이프가 이런 것일까. 다 버리고 나니 그에 맞는 공간이 만들어졌다.

책상을 버렸으니 내 작업공간은 이제부터 식탁이다. 식탁은 밥도 먹을 수 있고 책도 볼 수 있고 시도 쓸 수 있는 그야말로 다용도로 내게 사랑받을 것이다. 데스크톱 컴퓨터를 버렸으니 이제는 가방 속에 처박혀 있던 노트북이 내 손길을 듬뿍 받으며 자판 소리를 톡톡 내겠다. 냉장고도 하나를 버렸으니 하나 남은 냉장고는 가족들의 눈길을 더 많이 받으며 입을 벌릴 것이다. 에어프라이기를 버렸으니 전자레인지가 더 많이 손길을 타겠다. 정수기를 버렸으니 차가운 물 대신, 차를 끓여 마시며 따듯한 찻잔에 손을 감아쥐고 사유하는 시간을 더 많이 가질 수 있겠다. 서랍장도 버렸으니, 이제 옷들은 행거에 걸려서 더 많이 나와 눈을 맞추겠다. 작아진 창문에 맞지 않아 커튼을 버렸으니 이제 하늘과 바람과 별이 내게 더 자주 놀러 오겠다.

공간이 한껏 줄어서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아들은 말한다. "엄마 집이 정겨워요. 뭔가 서로의 거리가 더 가까워진 것 같아요. 전에는 방에 들어가면 다른 소리가 안 들렸는데 이제 거실에서 하는 말이 방에서도 다 들려서 늘 대화하는 기분일 것 같아요." "그래, 다행이다."라고 말하면서 밥을 차려준다. 도자기 찬기가 아니라 가볍고 보관하기 쉽고 공간도 덜 차지하는 플라스틱 반찬통을 사용해 식탁을 차리니 아이는 또 한 번 말한다. "이제 반찬을 깔끔하게 먹지 않아도 될 것 같아 좋아요." 라고. 집을 옮기면서 아이들이 불편해하면 어쩌나가 제일 걱정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따듯하게 이야기를 해주니 고마울 따름이다.

새봄이 왔고 새집에 이사를 했다. 새로운 시간을 새로운 공간에 붓고 새롭게 시작하리라. 과거는 과거로 떠나보내고 다가올 날들에 적응을 해야 한다. 어떻게 하면 못 살겠는가. 살면 다 살아지리라. 작은 집이나마 허락해주신 그 누군가에게 감사한다. 이제 이 집에 맞는 새로운 내력들이 하나하나 쌓이리라. 내게 다가올 시간 들을 소중히 여기며 매 순간을 지워지지 않는 기억들로 채워가리라. 죽을 때 가져갈 수 있는 것은 물건이 아니라 추억이라는 말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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