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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비

시인, 한천초등학교병설유 교사

가을은 눈코 뜰 새 없다. 햇살이 손을 흔드니 자연 속으로 현장학습도 가야 하고, 일 년간 배운 것을 무대에 올리는 학습발표회도 해야 하고, 내 수업 방향이 제대로 잘 가고 있나 점검하기 위한 공개 수업도 해야 한다. 교사로서 사는 것은 멀티플레이어가 되는 일이다. 유치원 교사의 경우 더더욱 그렇다. 교수자의 역할뿐 아니라 따듯한 엄마 역할도 해야 하고, 아이들 간에 다툼이 생길 때면 중재자 역할도 해야 하며 현명한 판단을 내리는 포청천 역할도 해야 한다. 행사 때에는 기획자의 역할과 예산 편성 및 집행자 또 안전관리자, 사후 관리 및 홍보 역할까지 그야말로 전천후다. 그러나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수업이다.

이번 공개 수업은 '허수아비 액자 만들기'를 하기로 했다. 도입 전개 정리 세 부분으로 수업을 계획하고, 소품을 만들고 아이디어를 구상한다. 허수아비와 아기 벼 엄마 벼를 만들고 들판의 벼들을 만들었다. 그리고 외국인이 75%, 다문화가 25%인 우리 반 아이들의 한국어 수준을 감안하여 동화 원고를 개작했다. 그러나 과연 아이들이 얼마나 스토리를 이해하고 집중할 수 있을지 고민되었다. 영상 세대인 만큼 미디어를 활용한 동화를 해 주기로 했다. 동화 구연하는 모습을 미리 촬영했다. 바람 부는 소리, 비 오는 소리 등 효과음을 영상에 넣고, 간단한 감탄사나 짹짹짹, 하하하, 팔랑팔랑 등 재미있는 의성어와 의태어 등은 자막으로 넣었다.

드디어 공개 수업이 시작되었다. 동화를 틀자, 아이들이 서툰 한국말로 입을 열었다. "우아~ 어떻게 텔레비전에서 선생님 나와?" "선생님 저기 언제 들어갔어?" 나는 "비밀이야!"라고 했고 아이들은 신기한 듯 수업에 집중했다. 수업이 끝난 후에도 아이들은 다시 틀어달라고 하며 몇 번이고 더 동화를 들었다. 아르만에게 수업에 잘 참여했다고 칭찬하자 이곳저곳에서 "내가는요? 내가는요?"라는 물음이 터져 나왔다. 모두 칭찬해 주고, 바깥 놀이를 나간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운동장을 걸으며 하늘을 본다. 푸르다. 소피아가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하자고 한다. 운동장 끝 골대에 막심이 서고 다른 아이들은 반대편 운동장 골대에 선다. 양쪽 팔로 눈을 가린 아이가 "무굼화꼬치 피었습니다!"라고 외치며 뒤를 돌아본다. 우리는 슬며시 걷다가 순간 얼음이 된다. 그때, 막심이 움직인 아이를 향해 손가락 총을 난사한다. "팜팜팜 피옹피옹!" 손가락 총에 맞은 아이는 가슴을 쥐고 으윽 신음소리를 내며 쓰러진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온다. 갑자기 운동장 가에 있던 빅토리아가 나를 부른다. 아이들이 운동자 가로 몰려든다. 송충이를 에워싼 호기심 어린 12명의 눈빛이 초롱초롱하다. 리엔이 말한다. "이건 누구야?" 그러자 알렉산드리아가 자신 있다는 듯 답한다. "새우 벌레!" 나는 빵 터진다.

아이들과 깔깔거리고 있는데, 바람이 분다. 나뭇잎 비가 온몸으로 쏟아진다. 누군가 잎을 떨구는 나무를 보며 소리친다. "오늘 나무 빡빡이 날이야?" 그러자 한 아이가 말의 바통을 받는다. "이제 나무 할아버지 됐어!" 나는 또 한 번 빵 터진다. 관념에 물들지 않은 아이들! 너무나 맑고 깨끗한 아이들과 가을 속에서 소소한 행복을 맛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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