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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비(김희숙)

시인· 주성초등학교병설유교사

산다는 것은 가진 것을 잃어가는 여정이다. 시간 속을 서성이며, 건강을 잃고 직장을 잃고 부모 형제를 무상하게 잃기도 한다. 시간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무기력한 존재인지 생각하게 된다.

"언제 올 수 있냐?" 수화기 너머 오빠가 앞뒤 없이 대뜸 묻는다. 엄마가 거실에서 넘어지셨다는 것이다. 허리가 금이 가서 시술하고 소변줄을 꼽고 계시단다. 두어 주는 꼼짝없이 병원 신세를 져야 한다는 것이다. 얼마 전 엄마의 생신에 갔을 때, 엄마는 다리에 힘이 없어서 혼자 일어나는 것조차 힘들어하셨다. 한번 몸을 움직이려면, 방바닥에 팔을 짚고 한참을 씨름한 후 겨우 일어나셨다. 그날 베란다에 나가셨다가 음식 놓는 선반을 헛짚으셨다. 소리에 놀란 우리들은 단숨에 뛰어갔다. 그릇이 와르르 쏟아지며 반찬이 넘어진 엄마를 덮고 있었고 엄마는 찬 바닥에 망연히 앉아 계셨다. 부축해서 나오는데 명치가 아려왔다. 86세니 그럴 만도 하다고 생각하다가도 엄마의 건강을 앗아간 시간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엄마는 늘 건강할 줄 알았다. 그렇게 맥없이 넘어지는 엄마를 보고 온 후, 그 모습이 수시로 떠올라 마음이 습습하게 젖었었는데 오빠에게 전화가 온 것이다.

서둘러 전주로 향했다. 남편과 동생 내외가 함께했다. 병원 입구엔 체온을 측정하기 위해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환자를 면회하고 싶으면 환자를 내려오라고 하여 입구에서 보든지, 코로나 검사를 한 후 음성이라는 검사증을 받아와야 한단다. 검사를 받겠다고 하자 결과는 하루 지나야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영락없이 이 도시에 발 묶여 이틀은 지내야 할 듯하다. 엄마를 문병하고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준비도 없이 내려왔다. 그러나 어쩔 수 없다. 여기서 그냥 돌아설 수는 없는 일이니. 입던 옷과 양말로 이틀을 버티고 머리도 감지 말고 사는 수밖에. 이럴 때 머리가 긴 게 얼마나 다행인지. 질끈 고무줄로 묶으면 안 감은 게 티가 안 나니 말이다.

선별진료소로 향했다. 검사원은 면봉으로 콧속과 입속을 마구 쑤셔댔다. 검사를 하고 나니 코가 얼얼하고 한쪽 머리도 띵했다. 김제 친정으로 가서 하루 나기로 했다. 엄마가 없는 빈집은 고요와 냉기가 판을 치고 있었다. 다음 날 오전 음성이라는 문자가 날아왔다. 그런데 음성일지라도 단체 면회는 안된다고 했다. 그래서 병실에 한 명씩 교대로 들어갔다. 첫 번째 타자는 나다. 나를 보자 엄마가 푸석하게 웃으신다. 그리고 그동안의 다친 사연과 시술 과정을 다 얘기하신다. 예전 같으면 "바쁜데 뭐하러 왔냐, 추운데 어서 가라" 고 하며 자식들 걱정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엄마는 이미 많이 늙고 지치신 듯 여기저기 불편한 부분을 말씀하신다. 한때는 서슬 퍼런 여장부로 사람들을 호위하셨었다. 카랑한 음성 매서운 눈초리 짱짱한 걸음으로 백 명이 넘는 인부들을 지휘하곤 했었다. 그래서 엄마는 늙지 않을 줄 알았다. 아프지도 않을 줄 알았다. 엄마는 강철도 씹어 소화 시키는 사람인 줄 알았다. 이제 보니 엄마는 아기가 다 되었다. 수많은 시간의 강을 건너오면서 몸도 마음도 약해진 나의 아기. 앞으로 엄마에게 얼마나 많은 아침과 저녁이 펼쳐질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우리는 시간 앞에서 한없이 약한 존재들이다. 시간은 우리에게 소중한 것들을 소리 없이 데리고 간다. 그러나 잃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가졌었다는 반증이 아닐까. 즉 시간은 우리에게 이미 많은 것을 주었었다. 태어나면서 부모를 주었고 살면서 직장도 주었고 자식도 주었다. 어쩌면 시간이라는 것은 준 것을 다시 되돌려 받는 자연의 가장 합리적인 운항의 법칙 아닐까. 자주 뵈러 와야겠다. 병원을 나서는 데 서늘한 칼바람이 휙 얼굴을 긋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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