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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비

수필가, 원봉초병설유치원교사

 어둠이 빛에 바래져 희미해진다. 밤과 낮의 여백을 채워주는 새벽이 오고 있다. 밝은 기운이 눈두덩 위로 내려앉는다. 병뚜껑을 따듯 눈꺼풀을 열고 주방으로 향한다. 일어나자마자 물 한 잔을 마시는 것은 오랜 습관이다. 이온수기 앞에 서서 알칼리 수 3단계를 누른다. "정수가 출수됩니다."라는 예쁜 여자의 목소리와 함께 물이 컵의 입속으로 떨어진다. 하얀 머그잔에 물이 가득차기를 기다려 정지 버튼을 누른다. 차가운 잔을 들어 입술에 포갠다. 물이 몸속으로 개울처럼 길을 내고 흘러 들어간다. 찬 물이 몸속에 섞여 내가 되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점점 더 뒤로 젖힌다. 문득 개수대 위로 뚫린 창을 본다. 밤새 눈이 내렸나보다. 먼 산이 하얀 옷을 입고 서있다. 얼른 컵을 내려놓고 앞 베란다로 가서 문을 활짝 연다. 알싸한 바람이 훅 밀려든다. 도로를 본다. 눈이 밤새 발 없이 내렸는지 길 위를 걷고 있는 눈은 보이지 않는다. 다시 화단을 본다. 벚나무의 회색 팔 위로 눈이 쌓여있다. 단풍나무의 다 벗은 몸 위에도 눈이 묻어있다. 초록빛 바늘을 온몸에 단 소나무도 희끗희끗한 눈을 쓰고 푸르게 서 있다.

 '날씨가 추워진 후에야 소나무와 잣나무의 푸르름을 안다'고 했던가. 오늘 새벽, 잎을 떨군 다른 나무와 대비돼 소나무의 푸르름이 더 확실히 다가온다. 소나무를 보고 있자니 추사의 세한도가 머릿속에 슬며시 발을 디딘다.

 인생의 혹한기인 귀향지에서 그렸다는 추사의 세한도. 조선시대 문인화로 원근을 무시하고 그려진 그림이다. 섬세하지는 않지만 꾸밈이 없는 그림이 혹한의 날들을 그대로 느끼게 해 준다. 제자인 이상적에게 마음을 담아 그려줬다는 그 그림 속의 소나무가 아파트 정원의 소나무와 중첩되는 것은 왜일까?

 세한도를 볼 때마다 '왜 이 그림이 국보가 됐을까'를 생각해 보게 된다. 얼핏 보면 그림이 참 성의가 없어 보인다. 나무 네그루와 소박한 집 한 채, 그리고 온통 적막이 내려앉은 겨울날의 들판이 그림의 전부다. 여기저기 여백이 가득하다. 가득한 여백 때문에 눈이 머무를 곳이 많아지는 것일까. 아무것도 없는 헐렁한 공간 속에 생각이 덧칠해져 얹혀 지며 사색에 젖는 것인지도 모른다. 만약 푸른 나무들이 그득한 그림이었다면 생각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있었을까.

 찬 겨울이 주는 시간의 여백처럼 오늘 아침 눈이 공간을 지운다. 그 지워진 공간이 내게 생각을 할 수 있는 여백을 갖게 한다. 지금 내 생은 어떤 계절일까? 사업에 실패한 지인이 어느 날 내게 했던 말이 떠오른다. 따뜻할 때 곁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인생의 추위가 찾아오자 추풍에 나뭇잎 떨어지듯 떨어져 나가더라고 한다. 오직 가족만이 소나무처럼 추우나 더우나 곁에 있더라고 한다. 내 인생에 겨울이 닥치면 내 곁을 지키는 사람은 누구일까. 가족 말고 남아있을 사람이 과연 몇 명일까.

 나는 여백이 많은 사람이다. 즉 빈 공간이 많이 사람이다. 빈 공간은 일종의 구멍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사람에게 구멍 이라는 것은 허점이라는 말과도 상통한다. 고로 나는 허점이 많은 사람이다. 늘 덜렁대고 실수도 잘 하고 가끔은 약속도 알사탕 먹듯이 까먹기도 한다. 때로는 꼼꼼하고 야무진 사람들이 부럽다. 이렇게 허점이 많은 내게 아직도 주변에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불가사의한 일이다. 그들은 어쩌면 그런 내가 걱정이 돼서 나를 떠나지 못하고 주변을 지키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그들에게 감사한다. 나도 사철 같은 색으로 덤덤하게 서있는 소나무처럼 그들 곁에 있을 거라고 혼잣말을 해 본다. 창밖에 바람 속에서 솔잎이 눈을 떨어뜨리며 푸르게 허공을 찌르고 있다. 계절의 여백인 겨울과 하루의 여백인 새벽이 세한도의 여백을 생각하게 하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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