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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비

주성초등학교병설유 교사·시인

폐암 진단을 받고 마음 준비는 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빨리 우리 곁을 떠날 줄은 몰랐다. 대구에 다녀오는 차 안에서 전화를 받았다. "엄마 언제 와요? 철이가 이상해요." 작은아들의 흔들리는 목소리가 귀를 파고들었다. "소변을 보고 나오다 비틀거리며 쓰러졌어요. 안아서 이불 위에 눕혔는데, 숨이 거칠고 누운 채로 똥을 쌌어요. 움직이질 못해요." 순간 직감할 수 있었다. 항문이 열린 것을. "지금 대구에서 가는 길인데, 한 시간 반 정도면 도착할 것 같아. 조금만 기다려. 철이 옆에 꼭 있어!"

전화를 끊고 한 시간이 지났을까 작은아들의 흐느끼는 목소리가 귓속으로 밀려왔다. "철이가 숨을 안 쉬어요." 눈앞이 흐려졌다. 남편에게 전화를 하고, 충주에 사는 큰아들 번호를 눌렀다. 큰아들의 목소리가 떨렸다. "정말이에요? 이렇게 빨리요? 6개월 정도는 시간이 남아있다고 했잖아요. 주말에 철이 보러 갈 걸 그랬나봐요." 아들은 바로 기차를 타고 오겠다고 했다.

두 아들이 초등학교 때,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17년 전에 철이가 처음 우리 집으로 왔다. 그는 우리 집 막내로 귀여움을 독차지하고 살았더랬다. 정신없이 달려 집에 도착했다. 현관문을 열자 작은아들은 숨 없는 철이를 안고 어깨를 들썩이고 있었다. 그는 눈도 감지 못한 채 굳어가고 있었다. 눈을 감겨주고 싸늘하게 식어가는 몸을 쓸어주었다. 커다란 상자를 가져와 담요를 깔고 그를 눕혔다. 그가 덮던 이불을 덮어주고 주변에 꽃을 빼곡하게 놓았다. 마치 잠든 오필리아를 보는 것 같았다. 금방이라도 그가 눈을 뜨고 나를 쳐다보며 반가운 목소리로 짖을 것 같다. 마지막 밤을 함께하고 싶은 마음에 그의 오른쪽에 요를 폈다. 그동안의 기억들이 파노라마처럼 머릿속을 떠다녔다. 밤새 자다 깨다를 반복하며 그를 쓰다듬어주었다. 어떻게 아침이 왔는지, 눈을 떠보니 약속이나 한 것처럼 온 가족이 거실에서 자고 있다. 남편은 소파에 큰애는 철이 아래에 작은 애는 철이 왼쪽에 누워있다. 우리는 서로의 퉁퉁 부은 눈을 보며 거실을 정리하고 문을 나섰다.

수목장을 하기로 했다. 공군사관학교 앞 묘목 가게로 갔다. 주인에게 물으니 칠자화가 좋겠다고 한다. 두 번 꽃을 피우는 나무란다. 여름에 하얀 꽃을 한 번 피우고 가을에 빨간 꽃을 또 한 번 피운다고 한다. 삶을 접는다는 것은 육신을 놓고 영혼은 어딘가로 가는 것이리라. 그가 빨리 자연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한지로 싸기로 했다. 딱딱한 철이를 들어 노란 한지 위에 올렸다. 그리고 초록 한지로 끈을 만들어 위아래를 묶어주었다. 칠자화를 심고 그 옆 구덩이에 철이를 넣는 순간 새들이 후드득 침묵을 깨고 날아간다. 우리는 둘러서서 마지막으로 철이에게 하고픈 말을 한다. 그동안 우리와 함께해 줘서 고맙고, 사는 동안 우리에게 행복을 줘서 고맙고, 더 고마운 건 마지막 순간까지 많이 아프지 않고 떠나줘서 고맙다고. 흙을 한 삽씩 떠 넣고 고갤 숙인다. 처마 밑 풍경이 쨍그랑 쨍그랑 울고 있다.

그의 물건을 정리한다. 후드티, 민소매 티, 목줄, 이름과 전화번호가 새겨진 목걸이, 아직 못다 먹은 영양제, 눈약, 닭고기 통조림, 그의 흔적들이 즐비하다. 장독대에서 항아리 뚜껑을 들고 와, 그의 체온이 묻어 있는 것들을 올려놓는다. 작은아들이 철이의 목걸이를 뺀 후 더미에 불을 놓는다. 사라지고 있다. 철이의 온기가 묻어 있는 것들이 하나 둘, 검은 재가 된다.

그의 이름이 새겨진 목걸이를 칠자화 가지에 걸어주고 고개 숙인다. 그가 이승에서 한 번 꽃으로 피었으니, 저승에서도 두 번째 꽃을 활짝 피우길. 이승과 저승을 관장하는 누군가에게 빌고 또 빌어본다. 마당에 핀 꽃 잔디가 응답하듯 파르르 떨며, 붉게 충혈된 눈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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