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기사

이 기사는 0번 공유됐고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김나비

시인, 한천초등학교병설유 교사

계절이 또 옷을 갈아입고 있다. 조석으로 불어오는 생경한 바람은 몸을 움츠리게 한다. 옷장 정리를 한다. 반 팔은 깊숙한 곳에, 긴 팔은 손이 닿기 편안한 곳에 놓는다. 주말엔 내복을 사야겠다고 생각하며 스카프를 정리한다. 분홍색 바탕에 기하학적인 무늬가 있는 스카프, 파란색 바탕에 꽃무늬가 그려진 스카프, 갈색 바탕에 검은 체크무늬가 수 놓여진 스카프, 초록색 민무늬 스카프…. 언제 이렇게 사 모았는지, 참 많이도 그러모았다. 세월이 쌓인다는 건 냄새가 쌓이는 것이라는데, 나에겐 어떤 냄새가 날까. 하늘거리는 스카프 속에서 내가 쌓은 욕심의 냄새가 스멀스멀 기어 나올 것 같아 멈칫한다. 물방울 스카프를 들고 냄새를 맡아 본다.

점·점·점

물방울 떨어진 자리

서릿발 나뭇가지에 내려앉아 하얀 날

장롱에 곱게 넣어둔 스카프를 꺼낸다

둘·둘·둘

감으면 파도 소리 목에 걸린다

폭풍이 밀려와 당신을 삼킨 새벽

바다의 고함을 뚫고 파도가 건넨 스카프

감는 건

사람의 체온을 데우는 일

사랑은 파도에 유영하듯 풀어주는 것

찬바람 일렁거리고 당신이 밀려오고

감기 위해

풀어야 했던 당신의 스카프

서리 내려 감기는 지금은 초겨울

저절로 스카프 감는 매큼한 계절이다

─ 김나비, 「물방울 스카프」전문 (시집 혼인 비행)

추위를 많이 타는 나는 스카프를 자주 감는다. 감는다는 것은 사람의 체온을 데우는 일이다. 체온을 데운다는 것은 기억을 데우는 것이다. 창밖에 초겨울 바람이 일렁이며 춤을 추고 있다. 내게 남아있는 겨울은 얼마나 될까. 많아야 스무 번일 것이다. 사는 동안 다른 사람의 기억을 데워줄 수 있는, 따듯한 스카프 같은 사람으로 남고 싶다.
이 기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관련어 선택

관련기사

배너
배너
배너

랭킹 뉴스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매거진 in 충북

thumbnail 308*171

경찰의날 특집 인터뷰 - 윤희근 경찰청장

[충북일보] 충북 청주 출신 윤희근 23대 경찰청장은 신비스러운 인물이다. 윤석열 정부 이전만 해도 여러 간부 경찰 중 한명에 불과했다. 서울경찰청 정보1과장(총경)실에서 만나 차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 게 불과 5년 전 일이다. 이제는 내년 4월 총선 유력 후보로 거론된다. ◇취임 1년을 맞았다. 더욱이 21일이 경찰의 날이다. 소회는. "경찰청장으로서 두 번째 맞는 경찰의 날인데, 작년과 달리 지난 1년간 많은 일이 있었기에 감회가 남다르다. 그간 국민체감약속 1·2호로 '악성사기', '마약범죄' 척결을 천명하여 국민을 근심케 했던 범죄를 신속히 해결하고, '화물연대 집단운송거부', '건설현장 불법행위' 같은 관행적 불법행위에 원칙에 따른 엄정한 대응으로 법질서를 확립하는 등 각 분야에서 의미있는 변화가 만들어졌다. 내부적으로는 △공안직 수준 기본급 △복수직급제 등 숙원과제를 해결하며 여느 선진국과 같이 경찰 업무의 특수성과 가치를 인정받는 전환점을 만들었다는데 보람을 느낀다. 다만 이태원 참사, 흉기난동 등 국민의 소중한 생명이 희생된 안타까운 사건들도 있었기에 아쉬움이 남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맞게 된 일흔여덟 번째 경찰의 날인 만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