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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비

시인, 주성초등학교병설유 교사

버스에서 내려 두근거리는 첫발을 떼는 순간 눈발이 날렸다. 막막하다. 영화 '피아니스트의 전설'의 주인공 나인틴헌드레드의 기분이 이랬을까. 평생을 배 안에서 살았던 피아니스트. 88개의 건반이 세상의 전부였던 그가, 버지니아 호와 항구를 잇는 마지막 트랩에서 느꼈던 두려움이 내 발끝으로 훅 밀려드는 것 같다. 전철을 타야 하나 버스를 타야 하나 택시를 타야 하나 머릿속이 소란하다. 인터넷을 검색한다. 숙소까지 가려면 전철은 세 번을 갈아타야 한다. 버스는 길을 건너고 한참을 걸어야 한다. 택시는 요금이 장난이 아니다. 어떤 선택을 한다고 해도 만만하지 않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는 잃는 것이 세상의 이치이듯. 편리함을 추구하면 금전이 나가는 것이고, 비용을 줄이려면 몸이 고생을 해야 한다. 곰곰 생각 끝에 택시를 타기로 한다. 경제적인 손실은 제일 크겠지만, 눈이 쌓이는 낯선 도시에서 홀로 헤매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았다.

택시 승강장에 도착하니 깔끔하게 차려입은 남자가 반가이 웃으며 차 문을 열어준다. 얼떨결에 올라타자 또 문을 닫아준다. 청주에서 택시를 탈 때는 내 손으로 문을 열고 닫았데, 낯선 풍경에 어리둥절하다. 난 '서울은 이렇게 친절한 곳이구나.' 생각하며 인사를 한다. 기사님은 넉넉한 목소리로 "어디로 모실까요?" 한다. 여의도에 갈 거라고 하자, 그쪽은 집값이 비싼데 어쩐 일로 가냐고 묻는다. 볼일이 있어 간다고 하니 거긴 아무나 사는 곳이 아니란다. 그러면서 나를 흘끔 쳐다본다. "저는 거기 안 살고요, 촌에서 왔어요."라고 대답한다. 내가 어리숙해 보였는지 기사님은 은근슬쩍 종교가 뭐냐고 묻는다. 나는 나 자신도 안 믿는 사람이라 하자 본인은 기독교인이라고 한다. 예수를 믿어야 한다고 한다. 시간이 없어 교회를 못 간다고 하자 작은 책자를 내밀면서 읽어보라고 한다. 하늘색 표지에 '한 절 묵상 신구약' 이라고 쓰여있다. 책을 펴서 대충 목차를 살펴본다.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놀라지 말라, 이 도시를 용서하겠다, 인생의 밤을 극복하려면' 등등 삶에 유용한 읽을거리가 있을 듯하다. 책을 보고 있는데, 기사님이 4대 성인을 아냐고 묻는다. 훅 치고 들어오는 질문이라 잠시 버벅거리다가 소크라테스, 공자, 석가모니, 예수 아니냐고 대답을 한다. 기사님은 목소리에 힘을 주며 4대 성인 중 예수만 신이라는 사실을 아냐고 묻는다. 알 턱이 없는 난 꿀 먹은 벙어리처럼 그 이유를 혼자 머릿속으로 찾아보지만 찾아질 리 만무하다. 침묵을 깨며 기사님이 말을 한다. 그 이유는 예수만이 무덤이 없기 때문이란다. 나는 종교는 잘 모르지만 어렸을 때 교회에서 맛있는 것을 많이 줘서 자주 갔었다고 동문서답을 한다.

기사님은 본격적으로 종교에 대해 연설을 하더니, 소원이 뭐냐 묻는다.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인데, 올해 문운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대답한다. 기사님은 자신이 기도해 주겠다며 명함을 달라고 한다. 중보기도의 힘을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다. 누구든 나를 위해 기도해 주는 것은 나쁜 일 같지 않아 명함을 건넨다. 그러면서 우연히 미터기 불빛에 시선이 갔다. 허걱~ 요금이 장난이 아니다. 깜짝 놀라서 "기사님 요금이 많이 나오네요? 인터넷으로 예상 요금은 미리 검색했었는데, 그것보다 훨씬 많이 나올 것 같아요." 하자 기사님은 "이건 모범택시예요." 한다. "그게 뭐예요?"라고 묻자, 요금은 일반 택시보다 비싸지만 안전하게 모시는 택시란다. 간이 콩닥콩닥한다. 어쩐지 도에 넘치게 친절하더라.

택시에서 내리니 눈발이 더 세차게 내 온몸을 휘감는다. 먹먹하다. 코 잡고 다녀야겠다. 낯선 서울, 사흘 간 무사히 건널지 걱정이다. 벌써 청주가 그립다. '한 절 묵상 신구약' 책의 목차가 머릿속에서 둥둥 떠다니며 활자로 말을 건넨다. '강하고 담대하게 두려워하지 말고, 놀라지 말며 이 도시를 용서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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