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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예

수필가

며칠 전 전화를 받았다. 처음으로 집을 마련했는데 너무 좋고 감사해서 그동안 가깝게 지낸 지인들에게 점심대접을 하고 싶다는 전화였다. 회원이면서 동갑이라는 이유로 흉허물 없이 지내온 터라 부담 없이 청한다하였다. 나 역시 초대에 쾌히 응했고 생애 첫 집을 장만한 시인에게 축하도 하고 집 구경도 할 겸 몇몇이서 시인의 집을 방문하였다.

현관에 들어서는 순간 몹시 당황스러웠다. 생각 외로 작고 허름하여 전혀 이사 온 티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집의 크기야 그렇다 치더라도 생애 첫 구입한 집이니만큼 적어도 집수리를 하고 기본 가구정도는 새로 갖춰 놓았을 것이라고 지레 짐작하였었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집수리는커녕 새 가구 하나 눈에 띄지 않았다. 더구나 집들이 하는 날이라면 북적거릴 텐데 낯익은 지인들만 네댓 명 있을 뿐 집안은 조용하기 그지없었다. 뭔가 전달과정에 문제가 있나싶었다.

시인은 금세 우리들의 기분을 알아채고 껄껄 웃으며 집을 사고 나니 수리 할 여유가 없어 주방만 약간 손을 보았다고 설명을 하였다. 서슴없이 말하는 행복한 시인 앞에서 조금 전 하였던 우리의 생각은 오히려 부끄러움이 되고 말았다.

시인의 집은 굳이 일어서서 구경을 할 필요가 없었다. 거실에 앉아서도 집안 전체가 한눈에 들어왔다. 예닐곱만 앉아도 꽉 찰것 같은 거실에는 그 흔한 소파도 없이 낡은 책장이 한쪽 벽면을 차지하고 있고 반대쪽 장식장위에는 오래됨직한 텔레비전과 가족들의 추억이 담긴 작은 액자와 몇 권의 책이 놓여있다. 오래전부터 써온 듯 음식을 담은 그릇들도 제각각이다. 소주잔도 모두 다르고 교자상의 옻칠도 여기저기 벗겨져 있다. 하지만 음식은 정갈하고 입에 착착 감겼다. 어찌나 맛이 좋은지 배가 부른대도 자꾸 자꾸 손이 갔다. 안주인의 손맛이 좋은 이유도 있겠지만 정성스레 음식을 만들었기 때문이리라.

상을 물리고 안방과 작은방, 거실의 책장을 살펴보았다. 시인의 유일한 사치였다. 자랑이었다. 빽빽하게 들어 찬 책들. 책들......,언제 그 많은 책을 다 모았는지. 그리고 어쩜 그리 잘 정리 되어 있는지. 부럽기 짝이 없다. 책 때문에 이사비용이 곱절로 들었다는 아내의 투정에 그저 웃기만하는 시인은 부자였다. 아니 재벌이었다. 가난한 시인이 늘 넉넉했던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다. 그 책들이야말로 시인의 삶이 윤택할 수밖에 없는 크나큰 배경이었던 것이다.

시인은 어느새 아내의 손을 잡고 와서 일일이 인사를 나누도록 배려하더니 아내의 모습을 말없이 바라보고 서 있다. 그저 웃으면서. 그런 시인의 눈에는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굳이 말은 안 해도 우리들은 알아 챌 수 있었다. 그가 얼마나 아내를 사랑하고 자랑스러워하고 있는지. 그리고 얼마나 행복한지를. 작은 것에 감사 할 줄 아는 가난한 시인. 그는 진정한 갑부였다.

문득 집들이의 참된 모습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닌가 싶다. 진심으로 축하해주는 사람들과 함께 하며 기쁨도 마음껏 표현하고 때로는 자랑도 하고 투정도 부리면서 행복을 공유하는 자리 말이다.

한 때는 남의 집들이에 제법 다녔었다. 그 때마다 으레 집의 평수를 묻고 값을 묻기 일쑤였다. 방마다 구경하며 인테리어와 가구는 잘 어울리는지 감상하기 바빴고 축하하는 마음보다 부러움이 앞섰었다. 넓고 시설이 좋은 최신식 아파트를 보고 오는 날에는 갑자기 우리 집이 작고 초라해서 속상한 적도 많았었는데......,

작별인사를 하고 현관을 나서는데 신발장위의 행운목이 눈길을 붙잡는다. 작은 소반의 물속에 섬세한 뿌리가 엉켜있다. 이리 저리 뻗으며 자리를 잡느라 야단법석이다. 힘찬 생명력이다. 행운목이 자라 꽃피는 그날, 시인은 지금보다 더 큰 부자가 되리라는 예감이 들었다. 마음의 부자뿐만 아니라 물질적인 풍요도 함께 하기를 소망하며 시인의 집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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