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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예

충북도 문화관광해설사·수필가

눈이 내린다. 이런 날엔 괜스레 마음이 설렌다. 그리운 사람 때문이다. 그를 처음 만난 날도 눈이 내렸다. 1976년 겨울, 친구들과 영화관을 나서는데 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다. 신이 난 우리들은 미끄럼도 타고 눈뭉치도 던지며 흠뻑 겨울 정취에 빠져 들었다. 그때 한 무리의 군인들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놀란 우리들은 후다닥 단골다방으로 도망쳤다. 자리에 앉아 그 순간을 얘기하며 깔깔거리고 있는데 우리 눈앞에 불쑥 그들이 나타났다.

"충성! 놀라게 해서 미안합니다. 사죄하는 마음으로 커피는 저희가 사겠습니다."

그들은 초급장교들이었다. 동기들끼리 시내구경을 나왔는데 우리들이 눈에 띄었단다. 한참 바라보다 용기 내어 말을 걸었는데 죽어라 도망가는 우리를 보고 당황스러웠단다. 그냥 가면 대한민국 육군의 체면을 손상시키는 꼴이 되고 나쁜 사람들이라고 인정하는 모양새도 될 것 같아서 오해를 풀려고 찾아 왔단다. 그들은 위풍당당하였다. 또래의 남자들보다 성숙해보였고 책임감과 용기에 훌륭한 매너까지 갖추고 있어 호감이 갔다. 그래서일까. 두 번째 눈이 내리는 날에 다시 만나자는 그들의 제안에 선뜻 응하고 말았다.

그날부터 우리의 대화에는 늘 그들이 있었다. 김 소위는 어떻고 권 소위는 어떻다하며 깔깔거렸다. 너는 누가 좋으냐며 은근히 심중을 떠보기도 하였고 그들 중 누가 어느 친구를 관심 있어 하는지 재보기도 하였다.

드디어 두 번째 눈이 내리기 시작하였다. 아주 조금씩이라 어느 동네는 눈 구경을 할 수도 없었지만 우리들은 모두 약속 장소에 모였다. 하늘도 우리마음을 알았는지 어느새 하얀 눈을 펑펑 내려주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약속 시간이 지나도 그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아무렇지 않은 척 수다를 떨고 있었지만 모두들 실망한 기색이 완연하였다. 두어 시간이 지날 무렵 막 일어서려는데 급히 군인 한명이 들어섰다. 군모에 하얀 눈을 잔뜩 뒤집어 쓴 채였다. 비상훈련 때문에 혼자서 나왔단다. 약속을 지켜줘서 고맙고 기다려줘서 고맙다며 바로 돌아선 그 사람. 왠지 믿음이 갔다. 멋이 있었다. 그날 이후 내 가슴에 비밀이 쌓였다. 그리움이 쌓였다.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 시절이 그립다. 그들이 그립다. 멋지던 그 사람이 너무나 그립다. 스마트폰으로 눈 오는 풍경을 잔뜩 찍었다. 그중 잘 나온 사진 몇 장을 골라 그에게 보냈다. 잠시 후, 휴대폰에서 카톡! 카톡! 답장신호가 바쁘게 울렸다. 잔뜩 기대를 안고 카톡을 확인하였다.

"참 팔자 좋다. 지금 눈 때문에 집에 갈 일이 걱정인데. 눈이 와서 좋다고·"

아, 남편은 예전의 그가 아니었다. 하기는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사십년 가까운 세월이 지났는데 옛 시절의 그를 기대한 내 잘못이 자못 크기만 하다. 하긴 아무렴 어떤가. 아무리 남편이 변했다 한들 1976년 첫눈 내리던 날의 사연이 사라질 리 있겠는가. 오늘처럼 눈이 내리면 저절로 떠오르는 추억인 것을. 아련한 그리움으로 다가와 미소 짓게 만드는 또렷한 기억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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