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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예

수필가

무심코 지나가는데 향긋하고 그윽한 냄새가 발길을 붙잡았다. 어디서 오는 향기인지 궁금증이 생겨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사방을 둘러봐도 꽃냄새의 출처가 될 만한 꽃밭이나 꽃나무가 없었다. 포기하고 막 모퉁이를 돌아서는데 대 여섯 살 정도의 아이 키만 한 작은 나무 몇 그루가 보였다. 나무의 굵기도 어린아이의 손가락보다 더 가늘어서 아직 나무라고 말하기에도 어색한 아주 작은 나무였다. '설마 저 어린 나무가…' 그래도 혹시나 싶어 다가갔다. 가까이 갈수록 더욱 강한 냄새가 풍겨왔다. 그만 정신이 아득해왔다. 꽃대를 가볍게 흔들어주니 온 세상을 다 감쌀 듯이 더 많은 향기를 품어내었다. 짙고 넘치지만 흔하지 않고, 달콤하고 향긋하나 천하지 않은, 기품 있는 냄새였다. 뜰 안에 한그루만 두어도 좋을, 그런 나무였다.

라일락! 발걸음을 붙잡은 냄새는 라일락꽃의 향기였다. 백과사전을 찾아보니, 라일락은 영어이름이란다. 프랑스에서는 리라라고 부르고 중국에서는 향이 좋아 정향나무라 부르며, 우리나라에서는 나무의 가지 끝에서 수수와 비슷한 모양으로 꽃이 핀다하여 수수꽃다리라 부른단다. 수수꽃다리. 참 아름다운 이름이다. 이렇게 예쁜 우리 이름이 버젓이 있는데도 여태껏 라일락이라는 외래이름으로 불려 왔다니.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

꽃하고 대화를 한다는 연극배우 김혜자님은 수수꽃다리의 향기가 가슴에 스며들 때면 '아 죽었으면 좋겠다.' 할 정도로 매료당했고 미당 서정주님은 '내영원은'이라는 시에서 '내영원은 물빛 라일락의 빛과 향의 길이로다.'라며 수수꽃다리의 추억을 평생 가슴에 품고 사셨다한다. 또 톨스토이는 소설 '부활'의 여러 대목에서 수수꽃다리를 아름답게 묘사하였고 번안가요인 '베사메무쵸'의 가사에도 '리라꽃 향기를 나에게 전해다오' 라며 수수꽃다리의 향기와 귀여운 꽃의 모습을 담아 사랑의 기쁨을 노래하였다.

이처럼 전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라일락의 원조는 우리 꽃인 수수꽃다리라고 한다. 1947년 미국 적십자 직원으로 우리나라에 온 사람이 야생 수수꽃다리의 향기에 반해 수수꽃다리를 채취하여 미국으로 가져가서 육종을 하고 개량을 하여 '미스 김' 이라는 이름의 라일락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 후, 미스 김 라일락은 꽃도 예쁘고 향기도 좋아 인기리에 전 세계에 판매되었으며. 수수꽃다리의 원조 국가였던 우리나라도 비싼 로열티를 주고 역수입을 하였다니. 그저 놀랍기만 하다.

이제 라일락의 원조는 우리의 토종 수수꽃다리가 틀림없으니 지금부터라도 제 이름으로 불러주는 것이 마땅하지 않을까싶다. 수수꽃다리라는 이름이 라일락보다 더 정감이 가고, 그렇게라도 불러야 몰래 반출당한 억울함과 토종 수수꽃다리의 주권을 조금이나마 회복하는 길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수수꽃다리뿐 아니라 전 세계 유명한 꽃의 상당수가 우리나라 야생화의 개량종이라고 한다. 백합은 우리 원추리 꽃 종자를 가져가서 네덜란드에서 만든 개량종이고, 카네이 션은 우리 패랭이꽃을 가져가 유럽에서 만든 개량종이며, 크리스마스카드 그림에 등장하는 미국 호랑가시나무도 우리 호랑가시나무가 원조라 하니. 참 기가 막힐 따름이다. 우리 꽃에 무관심하고 국력이 약했던 시기에, 일본과 미국 등에서 소중한 우리의 자원을 알게 모르게 반출해가는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벌어졌던 것이다. 그들은 우리의 자원을 상품화하여 로열티라는 명목으로 많은 이득을 취하고 되레 우리나라에까지 수출을 하였다니. 그들의 상술에 감탄하면서 한편으로 우리는 그동안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자책하지 않을 수 없다.

모퉁이를 돌아 나오려니 발걸음이 떼어지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더 취하고 싶어 수수꽃다리의 향기를 흠뻑 들이켰다. 몸 안으로 그윽한 향이 가득 차 왔다. 저절로 콧노래가 나왔다. '베사메~ 베사메무쵸~고요한 그날 밤 리라꽃 피는 밤에~.' 올 한해가 향기로울 것 같은 4월의 마지막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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