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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예

수필가

참 예쁜 날이다.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이 다 가을이다. 가을 색에 물 들은 남한강은 아름답다 못해 울긋불긋 요지경 속 같다. 무언가에 이끌린 듯 남한강을 따라 600여 년 전의 흔적을 찾아 길을 나섰다.

청룡사지! 그곳은 비어있었다. 고려 말 조선 초, 충주지방의 대표적 사찰이었다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황량하고 쓸쓸하였다. 절간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온갖 잡초만 가득하였다. 그나마 축대와 주초석이 남아 있어 옛 절터임을 짐작하게 하였다.

청룡사지 뒤쪽에 위치한 탑과 비, 사자석등을 찾아 골짜기에 들어섰다. 잡목들 사이로 오솔길이 꼬불꼬불 나 있다. 오랜 세월을 오고 가며 불심을 기른 흔적이라 생각하니 한발 한발 걸을 때마다 마음이 경건해졌다. 위전비를 지나 고운당사리탑을 뒤로하고 드디어 600여 년 전의 실체 앞에 마주섰다.

비록 절간은 다 타서 흔적도 없지만 보각국사탑과 탑비, 사자석등을 바라보며 조선 초 석공들의 장인정신과 청룡사의 위상을 엿볼 수 있었다. 조선조를 통해 이에 필적할 글씨가 없다는 보물 658호인 보각국사비는 여러 부분이 마멸되었고, 보물 656호인 사자석등은 상륜부가 없었다. 혼수의 유골을 비롯하여 옥촛대, 금망아지, 금잔 등이 들어 있었던 국보 197호인 탑은, 일제 강점기 때 도굴 당해 장엄구의 행방도 모른다니. 그저 안타깝기만 하다. 탑신에 조각된 신장상이 무기를 움켜쥐고 눈을 부릅뜬 채 서 있다. 다시는 도굴을 당하지 않겠다는 듯이.

청룡사는 고려시대에 창건되었다 한다. 한 도승이 근처를 지나다 여의주를 희롱하고 있는 용 두 마리를 보았다. 이를 기이하게 여긴 도승은 청계산을 살핀 다음, 용의 꼬리부분에 해당하는 곳에 암자를 짓고 청룡사라 불렀다. 그 후 고려 말 선사인 보각국사가 청룡사 서쪽에 연희암을 지었다. 보각국사 혼수는 왕사, 국사 책봉을 거부하고 전국 사찰을 돌며 선회를 여는 등 불교 발전에 크게 기여한 대화상이었다. 국사는 말년에 청룡사로 돌아와 입적을 하였다. 조선 태조 이성계는 국사의 죽음을 애도하며 청룡사에 대사찰을 중창하였고, 보각이라는 시호와 정혜원융이라는 탑호를 내렸으며 탑과 비, 사자석등을 세워 보각국사의 업적과 덕을 기렸다. 그 뒤로 조선시대 명 사찰로 내려오다 조선 말기 한 세도가가 후실 묘를 쓰기 위해 절을 불살라 폐사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청룡사는 불교서적을 간행한 사찰이었다. 서울대학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선림실훈(禪林實訓)을 비롯하여 여러 권의 책이 지금도 남아 있다. 또한 청룡사는 인근의 학동들을 가르치는 강학 장소이기도 하였다. 임진왜란 때 의병장이었던 조웅 장군은 가흥에서 남한강을 건너 글을 배우러 다녔고 조선의 재상이었던 허적은 엄정면에서 40리나 걸어 글공부를 다녔다한다.

아, 청룡사지! 잠시 눈을 감고 그려본다. 그윽한 풍경소리와 스님들의 독경소리, 학동들의 글 읽는 소리를. 보각국사의 부도이름인 정혜원융(定慧圓融)처럼 '온갖 이치가 만나 둥글어져 구별이 없다' 는 불타의 경지를 터득했던 명찰이었음이 분명하다.

홀로 청룡사지를 지키며 쓸쓸히 서 있는 석등 하나, 그 석등 밑에 타다 남은 초 한 자루가 놓여 있다. 누군가의 염원을 담아 제 몸을 태웠을 초. 그 간절함만큼이나 녹아내린 촛농. 그 염원위에 내 소망을 얹어놓고 합장을 하였다. 알 수 없는 그리움과 경건함에 그만 가슴이 먹먹해졌다.

어느새 풍경소리, 목탁소리, 글 읽는 소리가 600여 년의 기나긴 세월을 건너 와 나뭇잎소리, 산새소리, 시냇물 소리가 되어 청계산의 가을 단장을 재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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