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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예

수필가

청첩장을 받았다. 고대하며 기다리던 혼사라 반갑기 그지없다. 절대로 결혼 따윈 안 한다는 아이였는데…. 기특하고 고맙고 좋아서 마냥 웃음이 나왔다. 그것도 잠시, 신랑어머니의 이름을 보는 순간,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1980년, 내 친구 경희는 첫 단추를 잘못 꼈다. 그녀는 박력 있고 돈 잘 쓰는 자상한 한 남자를 만나 열렬히 사랑하였고 교제한 지 석 달 만에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과 동시에 그녀는 그 남자의 실체에 경악을 금치 못하였다. 결혼 때 받은 패물은 다 가짜였고 대추나무 연 걸리듯 빚이 많았으며 입만 열면 거짓말에 여자와 자식까지 있는 파렴치한이었다. 툭 하면 친정에서 돈 가져오라 성화요 폭력과 협박도 서슴지 않는 방약무인이었다.

내 친구 경희는 그 와중에 임신을 하게 되었고 낳을 것인지 말 것인지 수없이 고민하다가 아이를 낳았다. 자식이 생겼으니 남편도 변하리라 믿고 기대하였는데 그 남자는 변함이 없었다. 오히려 정도가 더 심해졌고 결국 친정에 알려지면서 7년 만에 그 수렁에서 빠져 나왔다. 그 대가로 그녀는 각서를 썼다. 평생 아이만 기르면서 혼자 살겠다고. 그 남자가 일본에서 산다는 소식도 들었지만 경희는 늘 불안해하였다. 좋은 사람이 생겼는데도 혼인 할 생각은 꿈도 꾸지 못하였다.

경희는 보험설계사 일을 시작했고 천성이 밝고 착해서인지 금방 그 일에 적응하였다. 경제적인 안정도 얻었고 아이도 무럭무럭 자라줬다. 모두들 고생 끝 행복시작이라 여겼다. 그건 꿈이었다. 아들이 중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경희는 또 끔찍한 고통에 시달리게 되었다. 아이는 밥 먹듯 결석하였고 무엇이든 엇나갔다. 빨간 머리로 염색하지 말라하면 노랑머리로 바꾸었고, 수업 빼먹지 말라하면 아예 학교를 가지 않았고 화가 나면 마구 거실 창을 부수었다. 경찰이 출동한 적도 여러 번이었고 자해로 인해 구급차에 실려 간 날도 있었다.

경희는 가끔 술을 마시고 신세한탄을 하였다. 죽고 싶다고. 남편보다 더한 아들이라고. 아들이 무슨 짓을 할지 몰라 겁나고 무섭다며 펑펑 울었다. 지쳐버린 경희는 아무런 희망이 없었다. 그녀의 삶은 지옥이었다.

경희 아들도 누구보다 더 힘들게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냈다. 반항하고 방황하기위해 태어난 아이 같았다. 제대로 된 고등학교에 진학하지도 못해서 전수고등학교에 들어갔고 아이는 그곳에서 처음으로 사진을 접하였다. 무언가에 집중하는 아들을 본 그녀는 아들이 갖고 싶어 하는 비싼 카메라를 사주었다. 학교만 잘 다니면 여한이 없겠다는 심정으로 말이다.

아이가 달라졌다. 사진에 푹 빠지고 말았다. 말썽은커녕 잠자고 밥 먹는 시간도 아깝다며 사진공부에 몰두하였다. 아이는 무사히 졸업하였고 그 후에도 사진 공부에 매달렸다. 주목받는 사진작가로 승승장구하더니 같은 일에 종사하는 배우자까지 만난 것이다. 죽어도 결혼 못할 것 같았던 문제아가 말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엄마 뱃속에서부터 여러 개의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한다. 그 여러 가능성 에서 가장 적합한 재능을 찾기 위해 몸부림치고 반항하며 방황하는 시기를 겪는다는데, 친구의 아들은 그 과정이 조금 더 치열하였던 듯싶다.

"선예야, 나 고생 끝이다! 우리 아들 장가보내고 이젠 진짜 김경희로 살 거다!"

내 친구 경희의 훨훨 나는 외침이다. 그녀의 목소리에 덩달아 가뿐해지는 따뜻한 봄날에, 나는 예쁜 청첩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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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