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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예

수필가

벌써 내일이다. 여러 달 전부터 예정된 백두산여행이 어느새 코앞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썩 즐겁지가 않다. 여행에 대한 호기심이나 설렘도 없이 그저 뜨뜻미지근한 나에게, 동행할 지인들은 뜨악해하며 한마디씩 던졌다.

"박 선생, 아직은 마음이 떨리는 나이잖아. 왜 그렇게 시큰둥한 거야?"

"여행은 마음이 떨릴 때 가야지. 다리가 후들거릴 때 가는 것 아니라잖아."

"우리도 이제 몇 년 안 남았어. 어차피 갈 여행이니 기분 좋게 떠나자. 오래 기억될 추억도 만들어야지."

지인들의 수다에도 가라앉은 기분은 쉽게 나아지지 않았다. 일찍 찾아 온 더위 탓도 아니고 가끔 느껴지는 허리통증이 온 것도 아니건만 매사에 의욕을 잃은 지 이미 대 엿새나 되었다.

보름 전쯤이다. 친언니와 다름없던 이웃언니의 남편이 서울소재 대형병원에 응급으로 입원을 하셨다. 이런 저런 검사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어서 빨리 쾌차하셔서 일상으로 돌아오시기를 기원하였다.

일주일 전이다.

"띠링 띠링 띠링"

오랜만에 집 전화가 거칠게 울어대었다. 이상하게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조심스럽게 수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영조 엄마, 오라버니 돌아가셨어."

이웃언니였다. 헉! 숨이 거꾸로 솟아올랐다. 세상에 이럴 수가. 막 울음이 터져 나왔다. 언니가 말했다. 놀라지 말라고. 큰 고생 없이 편히 가셨으니 얼마나 다행이냐고. 언니는 침착하였다. 얼른 울음을 삼키고 연락 사항을 체크하였다. 그러나 마음과 달리 놀란 머리는 얽히고 ●켜서 엉망이었다. 겨우 장례식장만이 떠오르고 몇 호실인지 발인 장소가 어디인지 전혀 생각나지 않았다. 어디 나뿐이랴. 소식을 들은 이웃과 지인들의 충격도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평소에 앓은 것도 아니고 갑자기 식사를 못하셔서 검사하러 올라갔는데 돌아가실 만큼 깊은 병이 있었다니….

장례식장에서 본 언니는 참 이상하였다. 웃었다가 울었다가. 화장장에서의 언니 행동은 더욱 더 이상하였다. 아무 일도 없는 사람 같기도 하고. 세상을 다 잃은 사람 같기도 하고. 자꾸 쓸데없는 말을 하고. 조문객들을 마치 집에 온 손님 대하듯 하고.

"어떻게 저 양반이 나한테 이럴 수 있어요. 여태껏 나나 애들한테 주기만 하더니, 갈 때도 우리고생 안 시키려고…. 참 매정하고 나쁜 사람."

언니의 넋두리는 계속되었다. 하지만 목소리는 점점 가늘어지고 소리 없는 눈물을 줄줄 흘리며 자꾸 축 처지는 어깨를 보면서, 이승과 저승으로 헤어지는 황망한 슬픔의 깊이가 얼마나 깊은지 가늠되었다.

처음이다. 친하게 지낸 친지나 지인 중에서 배우자를 먼저 보낸 일은. 그래서일까. 남의 일 같지가 않다. 그래서 우울하다. 기운이 없고 머릿속이 멍하다. 고대하던 여행이건만 그저 귀찮기만 하다. 아직 이별이 실감나지 않을 언니일 텐데. 그런 사람을 놓아두고 여행이라니. 미안하기 짝이 없다.

"그 분도 박 선생이 가는 걸 원할 걸. 어서 기운 내."

사정을 아는 일행 중 한 명이 기분을 전환시키려고 자꾸 애를 썼다.

'그래, 어쩌면 다시 못 볼 백두산이니 이왕이면 좋은 생각을 가지고 떠나자. 백두산의 정기나 잔뜩 받아오자.'

여행 가방을 꾸렸다. 슬픔도 꾹꾹 눌러 담았다. 천지에 모두 버리고 오겠다고 마음먹으며 꾹꾹 눌러 가방을 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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