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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예

수필가

요 며칠째 아파트 입구에 들어서면 나도 모르게 멈칫 서는 일이 자꾸 벌어졌다. 어디선가 은은한 향기가 풍겨오기 때문이다. 값비싼 향수의 고정된 냄새도 아니고 화학성분의 싸구려 냄새도 아니었다. 참 이상하다. 그 냄새를 맡으면 저절로 숨이 크게 들이켜졌고 하루 동안 찌들었던 삶의 찌꺼기가 싹 가시는 기분이었다. 하루 이틀이야 그냥 그러려니 하고 지나쳤지만 며칠째 계속되는 향기의 출처가 궁금하기 짝이 없었다. 향기의 진원지를 찾기 위해 시각과 후각을 곤두세워 이리 저리 살펴보았다. 그때, 아파트화단의 진분홍 꽃이 눈에 확 들어왔다.

분꽃이었다. 한 포기도 아니고 화단 전체가 온통 진분홍분꽃으로 가득하였다. 다가가 냄새를 맡아보니 며칠 동안 궁금해 하였던 바로 그 향기였다. 바쁘게 살아서일까. 그동안 화단에 무엇이 심겨져 있는지 관심가질 여유조차 없었다. 이처럼 많은 분꽃이 심겨져 있으리라 생각도 못하였고 분꽃이 여름에 피는 꽃이라는 사실도 까맣게 잊고 살아왔었다. 순간, 뭐라 말할 수 없는 미묘한 감정이 밀려왔다. 나도 모르게 분꽃 속으로 들어갔다. 얼른 쭈그리고 앉아 깊게 심호흡을 하였다. 그만 정신이 아득해졌다.

예닐곱 살 때로 기억된다. 어린 나이였지만 동생 셋을 둔 나는 엄마를 차지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만큼이나 어려웠다. 엄마에 대한 애착을 떼지 못하고 늘 엄마주위를 맴돌았다. 어쩌다 엄마 품에 안기면 향긋한 엄마냄새가 너무 좋았다. 조금이라도 더 엄마냄새를 맡으려고 꼭 매달리면 엄마는 다 큰아이가 애기 노릇한다며 밀쳐내기 일쑤였다.

어느 여름날, 이른 저녁을 먹고 친구들과 소꿉놀이를 하는데 어디선가 엄마냄새가 풍겨왔다. 엄마 역을 맡은 이웃집언니한테서였다. 언니는 선명한 분홍색의 분꽃 귀걸이를 귀에 걸고 있었다. 그리고 까만 분꽃씨앗을 돌로 빻더니 하얀 가루를 연신 얼굴에 발라대었다. 그런 언니한테서 엄마 냄새가 났다. 나도 언니처럼 하얀 가루를 얼굴에 발랐다. 나에게서도 엄마냄새가 났다. 드디어 엄마냄새를 실컷 맡았다.

다음부터 소꿉놀이를 할 때면 엄마노릇은 내 몫이 되었다. 귓바퀴가 얼얼해져도 귓속이 멍해져도 분꽃으로 귀걸이를 만들어 귀에 꽂았고 분꽃 씨를 가루 내어 얼굴에 덕지덕지 발랐다. 엄마를 향한 갈증과 허기는 분꽃 때문에 서서히 해소되었다. 소녀로 성장하면서 소꿉놀이는 뒷전이 되었고 드디어 엄마냄새에서도 해방되었다. 분꽃은 아련한 추억으로 숨어들었다. .어느새 손바닥 안에 진분홍 분꽃 두 송이가 올려 져 있다. 꽃을 따겠다고 작정한 것도 아니었는데......, 누가 볼세라 빨리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가만히 웅크린 손을 열었다. 조심스레 꽃을 돌려서 씨방과 꽃잎을 분리시킨 다음 귓속에 넣고 거울을 보았다. 화사한 귀걸이를 대롱대롱 매단 중년의 여인이 보였다. 수줍은 듯 계면쩍은 미소를 머금은 채......, 살랑살랑 고개를 저으니 분꽃귀걸이도 찰랑찰랑 춤을 춘다. 목과 볼에 닿는 감촉이 참 좋다. 풍겨 나오는 향기도 그만이다. 중년여인의 뒤편으로 예닐곱 살의 내가 살짝 보이는 듯하다.

문득 봄비 내리던 날이 생각났다. 경비 아저씨가 화단 안에 계셨다. 그저 인사치레로 무얼 하시냐고 여쭈었더니 꽃모종을 낸다고 말씀하였었다. 아마 그때 분꽃모종을 심으신 것 같다. 그 뒤로도 경비 아저씨가 화단에 머무르는 것을 여러 번 목격하였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겼었다. 분꽃모종은 경비 아저씨의 정성에 보답이라도 하듯 계속되는 무더위와 유난히 긴 장마를 잘 이기고 어느새 꽃동산을 이루었으며 퇴근 무렵에 더욱 활기차게 피어나 귀가하는 우리를 맞이하고 있었다. 새삼 엄마가 미치도록 보고 싶다. 소꿉놀이 친구들도 마냥 그립다. 지나간 것은 모두 그리움이 된다더니......, 옛날생각에 저절로 미소가 피어난다. 가슴이 따스해 온다. 이모두가 분꽃 덕분이다. 경비 아저씨의 노고 때문이다. 정성과 관심으로 화사하게 피어난 분꽃의 진분홍 향기 때문에 깊숙이 숨어 있던 분꽃추억이 되살아난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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