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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예

수필가

외롭단다. 서글프고 허망하단다. 잠이 오지 않아 뜬눈으로 새는 날이 많단다. 남편이 밉고 자식이 싫다고 야단이다. 계절 탓이고 나이 탓이라고 말하지 말라며 울먹인다. 위로랍시고 자꾸 갱년기 쪽으로 몰고 가면 전화를 끊겠다고 사뭇 협박이다.

그녀는 어느 날, 자신이 너무 낯설어 깜짝 놀랐단다. 어느새 백발천지가 되었고 총기가 없어진 눈, 셀 수없이 많은 잔주름, 커진 모공과 기미와 잡티로 얼룩진 얼굴을 보니, 그만 가슴이 먹먹해져 눈물이 줄줄 흐르더란다. 갑자기 덮쳐오는 슬픔에 마음을 다스리기가 힘들었단다.

그 후 그녀는 변했다. 남편의 말에도 쉽게 상처를 받아 부부싸움이 잦아졌다. 아이들에게 짜증을 부리고 집안일도 뒷전이었으며 모든 일에 흥미를 잃었다. 기능성 화장품에 돈을 아끼지 않았으며 일류 미용사를 찾아 머리 스타일을 바꾸었다. 살 빼는 약을 사기 위해 이 약국 저 약국을 순례하더니 의사의 처방전 없이는 살 빼는 약을 구하기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고는 굶기를 밥 먹듯 하였다. 그녀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여러 해 전에 내가 그러하였듯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남편과 자식에게 열과 성을 다하고 자신에게는 인색하였던 우리또래 여인네들이 거처야 하는 과정을 넘느라 투병 중이었다.

처음 그녀는 입을 열지 않았다. 몇 번의 설득 끝에 결국 자초지종을 알게 되었고 우리들은 앞 다투어 그 동안 혼자만 담아 두었던 경험담을 털어놓았다. 그녀는 지금 신이 나 있다. 친구인 우리들도 불어나는 살 때문에 늘 전전긍긍하고, 남편하고 결코 죽자 사자 사랑하지 않으며, 가끔 자식도 미워하고, 자식들이 내세울 정도로 잘 나가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 어쩜 그것보다는 고민을 들어주는 허물없는 친구들이 있기에 살맛이 나는지 모르겠다. 그녀는 우리들만의 여행을 제안하였고 우리들은 쌍수를 들고 환영하였다.

"콘도는 예약했어. 선자는 네가 좋아하는 커피떡 만들어 온다고 했어. 미애는 만두, 나는 밑반찬 준비할게. 너는 과일이나 좀 사 와라."

그녀의 목소리는 여고시절로 돌아가 있었다. 잔뜩 들떠있었다. 참 오랜만이다. 여고시절 설악산으로 수학여행을 다녀온 것이 첫 여행이었고 내가 결혼하기 전 동해에 간 것이 두 번째 여행이었다. 삼십여 년이 지나서야 세 번째 여행을 떠나게 되다니. 서로에게 무심했던 세월이 그저 아쉽기만 하다.

학창시절, 우리는 참 친했었다. 이성이나 진로에 관한 고민도 함께 나누었으며 시험공부한답시고 공부는커녕 밤새 웃고 떠들어 함께 시험을 망친 적도 있었다. 화장실도 같이 다녔고 수업시간에 라면땅을 나누어 먹다가 벌을 선적도 있었고 사복차림으로 영화를 보다가 단속 나온 선생님을 피해 도망을 친 적도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어디 그뿐이랴! 사회인이 되어서도 같은 양장점을 다니고 같은 메이커의 구두를 신었다. 미장원도 같이 다니고 치과까지도 같은 병원을 이용하였으며 하물며 데이트까지도 함께 하여 상대방이 난감해 한 적도 여러 번이었다. 그러다 보니 좋아하는 음식과 옷 입는 스타일도 비슷하였고 생각과 행동도 많이 닮아 있었다.

그러나 결혼을 하고 우리들은 서서히 멀어졌다. 너나없이 허물을 감추고 포장된 모습으로 서로를 대하였다. 해가 지날수록 각자의 환경에 따라 달라도 너무 달라졌다. 달라진 만큼이나 사이가 멀어진 우리들은 서로의 생활에 빠져 지냈다. 50대 중반이 지나서야 우리들은 스스럼없던 옛날이 다시 그리워졌다. 우리는 다시 뭉쳤다. 뜻밖에도 우리들은 닮아있었다. 그토록 오랫동안 다른 세상에서 살아왔는데도 생각과 행동, 고민까지도 비슷한 둥글둥글한 아줌마가 되어 있었다.

이 가을, 우리는 여행을 떠난다. 나이와 겉모습에 연연해하지 않고 자신을 위해 살줄도 아는 현명한 여인이 되기 위해 허물벗기를 하러간다. 돌아오는 날, 지금보다 더 둥글고 더 야무진 여인들이 되어 있기를 소망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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