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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예

수필가

이 아파트로 이사 온지 벌써 스물하고도 다섯 해이다. 생전 늙지 않을 것 같던 남편도 어느새 반백이 되었고, 건강이라면 자신만만하던 나도 요즘 어깨가 아프고 시력도 시원치 않은 걸 보니, 이십 오년이란 세월이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인가 보다. 하기는 중학생이던 아들이 일가를 이루어 두 아이의 아빠가 되었고 초등생이던 딸도 아이 둘을 가진 학부모로 바뀌었으니, 생각보다 긴 시간임에 틀림이 없다.

어디 우리 가족뿐이랴. 맨 날 징징거리던 사층 꼬맹이가 어엿한 청년으로 자라서 한의사가 되었고, 사내아이 같던 칠층 딸내미는 애교 넘치는 예쁜 아줌마로 바뀌었으며 십층 아저씨의 코흘리개 어린애들도 제 몫을 다 하는 직장인이 되어 있었다. 그러는 사이에 삼십대 후반이었던 우리부부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어 버렸고 아파트도 우리처럼 나이를 먹고 늙어버렸다.

낡고 허름한 아파트가 싫어서일까. 아니면 지겨워져서 일까. 이웃들이 하나 둘 떠나갔다. 그럴 때마다 뭔지 모를 섭섭함이 들었지만 이상하게도 남편과 나는 이사를 꿈꾸어 본 적이 없다. 자식들이 집을 옮기라고 성화를 부려도 왜 이 집에 미련이 남는지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스물다섯 해 전, 이 아파트로 이사 온 날이었다. 밤에 시내 야경을 보고 딸아이가 탄성을 질러 대었다.

"엄마 아빠, 저기 좀 보세요. 크리스마스트리 같아요. 우리 집이 우리한테 주는 선물인가 봐요. 와, 정말 너무 너무 예뻐요."

이삿짐 정리도 뒤로 미루고 우리 네 식구는 한참동안 야경에 취해 있었다. 어찌나 환상적이고 아름답던지. 좋아라하는 자식들이 어찌나 사랑스럽던지. 덩달아 우리 부부도 참 많이 행복했었다. 어쩌면 그때부터 인 것 같다. 이 아파트가 그냥 좋아지기 시작한 순간이.

이 아파트는 생각지도 않았던 많은 보물을 지니고 있었다. 금봉 산이 눈앞에 펼쳐져 있어 봄, 여름, 가을과 겨울 산의 변화를 맘껏 볼 수 있었다. 거실에 누우면 하늘이 한 눈에 들어와서 별이 총총한 밤이면 아이들과 쏟아지는 별빛을 보며 노래를 부르고 시를 읊었다. 불면증이 오면 거실까지 찾아오는 달빛을 친구삼아 잠을 청할 수 있었고 가끔은 소름끼치도록 아름다운 감빛노을도 감상할 수 있었다. 설거지를 하다 작은 창을 통해 본 계명 산의 설경도 예상 못한 보물 중 하나였고 봄이면 노란 개나리, 여름에는 빨간 장미꽃, 가을이면 노란색 은행잎과 붉게 물든 느티나무도 다 뜻밖의 보물이었다.

그러나 그 어느 것보다 가장 큰 보물은 사랑스러운 손자들의 흔적들이다. 아직도 벽에 붙어 있는 한글 공부와 숫자 공부, 알파벳과 낙서들, 우리 집에 올 때마다 으레 키를 재고 표시하느라 막 그어 놓은 금들과 숫자들…. 지저분하고 어수선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그냥 놔두려 한다. 그것을 보면서 내가 손자들을 그리워하듯 손자들도 그 흔적들 속에서 함께 산 순간들을 기억할 테니깐 말이다.

우리 집은 참 볼품없다. 사십년이 된 장롱과 화장대, 낡아버린 식탁과 책장, 생명이 다 되어가는 가전제품들, 그리고 유행이 지난 커튼과 나이 먹은 우리 부부…. 그래도 난 우리 집이 좋다. 금봉산과 계명산의 경치가 좋고 내 자식들이 12년 동안 다녔던 학교들이 다 보여서 좋다. 익숙한 이웃들이 있어 좋고 더더욱 손자들의 향기가 있어 참 좋다. 지나간 것들은 모두 다 아름답다는데, 스물다섯 해의 아름다움을 추억하기에 이만한 집이 또 어디 있으랴 싶어 정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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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순 인구보건복지협회 세종충북지회장 인터뷰

[충북일보] 지난 1961년 출범한 사단법인 대한가족계획협회가 시초인 인구보건복지협회는 우리나라 가족계획, 인구정책의 변화에 대응해오며 '함께하는 건강가족, 지속가능한 행복한 세상'을 위해 힘써오고 있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조경순 인구보건복지협회 충북세종지회장을 만나 지회가 도민의 건강한 삶과 행복한 가족을 지원하기 위해 하고 있는 활동, 지회장의 역할, 앞으로의 포부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봤다. 조경순 지회장은 "인구보건복지협회 충북세종지회는 지역의 특성에 맞춘 인구변화 대응, 일 가정 양립·가족친화적 문화 조성, 성 생식 건강 증진 등의 활동에 앞장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자신의 33년 공직 경험이 협회와 지역사회의 협력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일에 도움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충북도 첫 여성 공보관을 역임한 조 지회장은 도 투자유치국장, 여성정책관실 팀장 등으로도 활약하고 지난 연말 퇴직했다. 투자유치국장으로 근무하면서 지역의 경제와 성장에 기여했던 그는 사람 중심의 정책을 통해 충북과 세종 주민들의 행복한 삶과 건강한 공동체를 만드는 일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에 비상임 명예직인 현재 자리로의 이동을 결심했다고 한다. 조 지회장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