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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예

수필가

밤새 잠을 설쳤다. 때 이른 더위 때문에 남들은 덥다고 야단인데 왠지 자꾸 춥다. 발이 시려 겨울 양말을 꺼내 신었어도 여전하다. 복용하고 있는 약의 부작용인가 싶어 걱정이 태산이다.

수술을 한지 벌써 두해가 지났다. 수술 후 약을 처방받고 열심히 먹었지만 의사선생님이 기대한 만큼의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결국 복용하는 약을 바꾸었고 오늘 그 결과를 보러 가는 날이다. 머리가 복잡하다. 내 머리 속에는 검사결과가 여러 가지로 나열되어 있다. 그 결과에 따라 스스로 처방까지 내리며 지옥과 천국을 넘나들고 있다.

재작년 1월이었다. 유난히 피곤하고 자주 기운이 빠졌다. 목에 열감이 느껴지더니 급기야 목소리까지 잠겨왔다. 목감기려니 생각했지만 평소와는 좀 다른 증세였다. 병원에서 기관지염이라 진단받고 약을 먹었지만 효과가 없었다. 초음파검사를 하였다. 모양이 좋지 않은 작은 혹이 있다며 의사선생님이 서울의 큰 병원을 추천해주었다. 암이란다. 의사의 말을 듣는 순간 꿀꺽 마른침이 삼켜졌다. 선생님의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울리더니 내 몸이 두둥실 떠오르는 것 같았다. 어떻게 진료실을 나왔는지 모르겠다. 남의이야기 같기도 하고 내 이야기 같기도 하고 그저 멍하였다. 대기실에서 기다리던 남편이 벌떡 일어나 다가왔지만 차마 입을 뗄 수가 없었다. 쳐다 볼 수조차 없었다.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것 같아 시선을 피하기에 급급하였다. 어느 정도 진정하고 남편을 바라보니 남편얼굴이 잔뜩 굳어 있다. 눈을 감고 연신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말하지 않아도 이미 알고 있다는 듯.

그날부터 남편이 미워졌다. 모든 원인이 남편 탓만 같고 매사에 짜증이 났다. 아이들이 놀랄까봐 알리지 말라고 다짐을 하였건만 수술 날자가 다가오자 남편은 아이들과 시댁에 알리고 말았다. 한바탕 난리가 났다. 아이들과 부모님, 형제들이 받은 충격이 너무 커서 오히려 내가 그들을 위로 하고 다독여야 했다. 아무렇지 않다고. 갑상선암은 암도 아니라고. 암중에서 완치율과 생존율이 가장 높은 암에 걸린 것은 정말 불행 중 다행이라고.

입원을 하고나서야 내가 암에 걸려 수술을 앞두고 있다는 사실이 실감되었다. 겁이 덜컥 났다. 수술실에 들어가기 전 손자 녀석이 달려와 볼에 입을 맞추더니 "사랑해. 할머니는 잘 할 수 있을 거야"라며 속삭였다. 녀석의 이 한마디에 그만 최면이 걸렸는지 손자 녀석의 환한 모습이 계속 눈앞에 아른거렸다. 덕분에 수술의 공포를 이길 수 있었다. 수술 결과도 생각보다 좋았다. 다행스럽게도 암이 갑상샘 한쪽에만 진행 중이었고 피막이나 임파선 전이도 없었다. 한쪽만 절개하였고 동위원소치료도 받지 않았다. 아직 목소리가 거북하고 매일 약을 먹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따르지만 거의 정상적인 생활을 누리고 있다. 선배환자의 조언대로 성깔 고약한 동지 하나가 생겼으니 조심하고 이해하며 평생 함께 해야 한다고 마음먹은 덕분인가 보다. 그러나 걱정될 때도 많다. 갑자기 피로하거나 밥맛이 없으면 혹시 재발이 된 것은 아닌지. 다른 곳에 전이가 있었는데 미처 발견하지 못해 이제 그 증상이 나타나는 것은 아닌가. 자꾸 의심이 생긴다. 특히 검사결과를 확인하러 가는 전날 밤에는 으레 잠을 설치기 일쑤이고 작은 일에도 기분이 좌우될 만큼 예민해지고 마음이 약해진다.

딸아이한테 전화가 왔다. 병원 가는 날을 잊지 않고 있었나보다. 뒤이어 며늘아기도 결과를 물어왔다. 기억하고 있어 고마웠지만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몰라 부담스러웠다. 아이들의 근심거리로 전락할까 두렵기 때문이다.

아, 다행이다. 결과가 좋단다. 갑상선호르몬의 수치가 좀 부족하지만 그건 신경 쓸 일이 아니란다. 여섯 달 후에나 보잔다. 며칠째 계속되었던 걱정이 싹 가시었다. 콧노래가 절로 났다. 후끈 불어오는 바람마저 상쾌하다. 밤새 시리던 발도 어느 틈에 다 사라지고 따뜻한 온기가 서서히 감돌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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