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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예

수필가

뭐가 그리 반갑다고 자리까지 안내하며 호들갑을 떨었는지 후회막급이다. 조촐한 모임이 있었다. 거의 끝날 무렵 딸의 초등학교 5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들어오셨다. 같은 아파트에 살지만 자주 만나지 못해 무척 반가웠다. 벌떡 일어나 인사를 나누었다.

"은희 결혼했어요?" 딸과 친구였던 선생님의 딸아이 혼인여부가 궁금하여 물었더니 순간 선생님의 표정이 야릇하게 변하였다. 무언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선생님을 자리로 안내하고 내 자리로 돌아왔지만 영 개운치가 않았다. 힐끔힐끔 선생님 쪽으로 자꾸 눈길이 갔다. 아이고, 이럴 수가. 선생님 성함이 이 은희인데 은희는 몇 반이냐고 묻다니. 얼마나 황당하셨을까. 너무 어이가 없고 기가 막혔다. 혹시 내가 치매초기인가. 가볍게 웃어넘기려 했지만 얼마 전 있었던 사건이 떠오르면서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며칠 전이었다. 서울행 고속버스에 앉아 출발을 기다리고 있었다. 낯선 여성이 버스에 오르며 눈이 마주 치자 활짝 웃었다. 참 성격이 밝은 사람이다 여기며 같이 웃어 주었다. 그런데 그녀는 가까워질수록 더 큰 웃음을 짓더니 서울 가느냐며 급기야 손까지 잡는 것이었다. 누구일까. 도대체 생각나지 않는데. 왜 이 사람은 이토록 반가와 하지. 어떻게 대처해야할지 난감하기 그지없었다.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그녀의 착각이라 결론을 내리고 손바닥으로 내 가슴을 두드리며 물었다.

"저를 아세요?" 그녀의 안색이 싹 변하였다. "어머머. 나를 몰라요? 앞집에 살던 사람도 몰라보다니…" 비록 살이 찌고 주름은 늘었지만 오 년 동안 서로 현관문을 열어놓고 지내다 십 여 년 전에 이사를 간 동갑장이 모습이 그때서야 보였다. 부끄럽기 짝이 없었다.

나이가 들어서일까. 요즘의 화두는 치매와 건망증이다. 모임에 나가면 건망증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환갑은 맞이한 어느 분은 모임 때마다 늘 좌불안석이다. 왜 그러냐고 물으면 가스 불을 켜두고 나온 것 같단다. 궁여지책으로 현관문에 '가스 불 확인할 것' 이라고 써 붙였는데도 그 문구 읽는 것조차 잊어버리고 그냥 나왔다고 한탄이다. 왕성한 사회활동을 하고 있는 어느 분은 음식점 전화를 빌려 전화를 하는데 아무리 눌러도 신호가 가지 않아 주인을 불러 전화가 고장이라고 했더니 막 웃더란다, 수화기를 들고 계산기를 누르면 전화가 되겠느냐는 주인의 놀림에 계면쩍었었다며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그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 여기고 배꼽을 잡고 실컷 웃었는데 연거푸 두 번이나 실수를 하고나니 드디어 때가 온 듯싶다. 마침 일간지에 '아! 치매'라는 제목으로 자가 진단표가 실려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문항을 꼼꼼히 읽어가며 자가진단에 들어갔다. 아들을 오빠라 부르지 않고. 간장 공장 공장장 정도는 제대로 발음하고. 아직 냉장고 안에 리모컨을 넣은 적이 없고. 집도 제대로 찾아올 줄 알고. 내 이름과 가족들 이름을 분명히 기억하니 분명 치매는 아니렷다. 경미한 건망증. 누구나 생기는 자연현상이라고 자가 진단을 내렸다. 두 사람을 기억의 한쪽으로 잠시 묻어둔 거라고 스스로 위안을 하였지만 벌써 건망증이 들 나이인가 싶어 씁쓸하기만 하다.

우리들이 치매에 대해서 지대한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미국대통령 레이건 때문이다. 레이건 전미대통령은 치매가 깊어지자 미국인들에게 편지를 썼다. '나는 이제 내 인생의 황혼을 향한 여행을 떠난다. 그러나 미국은 항상 빛나는 아침을 맞으리라 믿는다.' 솔직 담백한 그의 편지는 많은 미국인들을 울렸다한다. 어찌 미국인들뿐이겠는가. 치매를 앓을지도 모르는. 언젠가는 치매가족을 돌봐야 할지도 모르는 모든 이들의 마음을 울렸을 것이다.

치매란 정말 무엇일까 반문해본다. 문득 다 비우고 떠난 법정스님이 생각난다. 그래 무소유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조금씩 채워졌던 온갖 잡다한 것들을 버리는 과정이다. 갓난아이보다 순수하고 솜털보다 가벼운 영혼을 만들기 위한 인내의 시간이다. 자연으로 돌아가기에 앞서 세상과의 인연마저도 끊기 위한 고통분담. 빈손으로 왔다 빈손으로 가기위한 처절한 싸움. 바로 그것이 치매인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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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