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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예

수필가

밤을 꼬박 새었다. 40여년 만에 기차를 타고 동해바다를 간다니. 도저히 흥분되어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어디 나뿐이랴. 동창친구들도 모두 밤을 설쳤단다. 그래서일까. 너나없이 환갑지난 여인답지 않게 목소리 톤이 높고 얼굴가득 함박웃음이다. 기차가 도착하자 재빨리 좌석 표를 확인하고 일등으로 기차에 올랐다. 그런데 객실 문이 잘 열리지 않았다. 기다리던 승객 하나가 밀지 말고 누르라고 야단이 났다. 자동버튼을 누르지 않고 문을 밀고만 있으니 답답했었나보다.

정말 오랜만이다. 무려 사십 여년이 지났으니 말이다. 너무 긴 단절 때문인지 잠시들 어색해 하였지만 금방 기차 여행의 묘미에 빠져들었다. 산등성이를 돌때마다 간간이 보이는 하얀 눈에 감탄하고 터널 앞에 불쑥 나타나는 절경에 환호하였다. 밭에서 썩고 있는 배추에서 농사꾼의 안타까움을 나누었고 속살 훤히 드러낸 겨울 산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였다. 우리들은 쉴 새 없이 재잘거렸고 기차는 우리의 마음을 싣고 다른 설렘을 향해 달리고 달렸다.

돌연 "야, 바다다." 함성이 들렸다. 아, 시리도록 푸른 동해 바다가 드디어 눈앞에 펼쳐졌다. 아련히 보이는 수평선 위로 서슬 퍼런 쪽빛하늘도 보였다. 바다가 하늘인지 하늘이 바다인지 가늠하기조차 힘들었다. 어쩜 바다와 하늘은 본래 하나가 아니었을까.

목적지인 정동진은 예상보다 바닷바람이 거칠었다. 세찬바람에 몸이 저절로 날아갈 것만 같아 잔뜩 웅크리고 백사장을 걸었다. 모래들이 발목을 휘감고 올라 와서 온몸에 마구 파고 들었다. 당당하게 서 있던 작은 소나무도 바람을 이기지못하고 우두둑 우두둑 솔방울을 떨어뜨렸다. 얼른 주워 냄새를 맡아보았더니 유난히 솔 향이 강하고 생김새 또한 특이하다. 강가의 자갈이 물살에 쓸려서 닳아진 것처럼 이 솔방울도 바닷바람에 시달리고 닳아서 매끈한가보다. 마치 우리들 같았다. 살다보니 저절로 둥글어진 초로의 여인들 말이다.

더욱 거세진 바람에 바다가 흔들리고 하늘이 흔들렸다. 갑자기 밀려온 파도를 피하느라 여기저기서 난리가 났다. 쉴 새 없는 비명소리와 탄식이 터져 나왔지만 바람은 아랑곳하지 않고 바다를 몰아세웠다. 바다는 사람들을 희롱하고 사람들은 바다를 느끼느라 여념이 없다. 거센 바람과 얼얼한 추위 때문에 더 이상 바다와 마주하지 못하고 숙소에 들었다. 숙소에서 내려다본 바다는 더욱 일품이었다. 끝없이 펼쳐진 해안선과 검푸른 바다! 뭉게구름 떠 있는 서슬 푸른 하늘! 파도 끝에 산더미같이 밀려드는 새하얀 포말들! 너무 경이롭고 신비스러웠다. 춤추는 겨울바다는 두렵지만 아름다웠다. 거칠지만 자애로웠다.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임은 물같이 까닥 않는데.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날 어쩌란 말이냐" 한 친구가 정적을 깼다. 청마 유치환님의 시 '그리움'이다. 뒤를 이어 다른 친구가 바다에 관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자, 우리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손뼉 치며 합창을 하였다. 신기하였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는데 다 생각났다. 우리가 함께 불렀던 노래들이 샘솟듯 쏟아져 나왔다. 바다가 우리인지 우리가 바다인지. 어느새 우리는 하나가 되어 사십 여년의 공백을 훌쩍 뛰어 넘었다. 즐겁고 편안하였다.

우리들은 여중과 여고를 같이 다닌 동갑친구들이다. 서로 소식 없이 지내다 작년에 환갑 나이가 되면서 다시 연락이 되었고, 걱정스레 이루어진 첫 만남이었는데. 역시 우리들은 친구였다. 아름다운 추억들을 공유한 동갑내기. 내 소중한 친구들이었다. 순수했던 시절로의 순간이동여행이 떠나고 싶을 때, 동반이 가능한 내 벗들. 이들이야말로 진정한 나의 친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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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