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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예

수필가

"카톡!카톡!카톡!~"

연신 카톡이 울어댄다. "은우가 말대꾸를 해요. 공부는 안하고 게임만 좋아하고. 된통 혼나고 자는데 너무 마음이 아파요." 딸이다. 딸의 심정이야 십분 이해가 되지만 아직 어린 손자에게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앞선다. 이제 10살 된 은우는 하루가 다르게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주장이 강하고 나름 그이유가 타당하여 깜짝 놀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러나 딸은 아직도 은우가 아기 때처럼 엄마 말을 잘 따르는 착한 아들이기를 바란다. 반면 은우는 자신이 다 컸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가끔 딸과 손자의 힘겨루기가 일어난다. 바로 오늘이 그날인가 보다.

문득 한 아이가 생각났다. 주말에 박물관에 봉사하러 오는 학생인데 언제나 같은 표정과 같은 목소리로 인사하고 똑같은 자세로 앉아 있다가 딱 12시가 되면 돌아가는 중학교 2학년 남학생이다. 첫 대면부터 참 소심한 학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좀 편해지라고 자꾸 말을 걸었다.

늘 성적이 일등인데다 글짓기며 미술, 과학, 수학경시대회의 단골 수상자이고 역사 스토리텔링 대회에서도 일등을 하였고 유치원 때부터 배운 영어회화도 제법이란다. 책 읽는 것을 좋아 해 친구가 없으며 게임도 재미없고 휴대폰도 필요 없단다. 동생하고도 싸우지 않고 부모님께 혼이 난 기억이 없으며 학교에서 말썽을 부린 적도 없고 주말에는 계획표대로 꼭 실천을 한단다. 깜짝 놀랐다. 팔방미인에다 정말 훌륭하고 착한 아들이었다.

"학생은 꿈이 뭐야?" "대통령이요."의외였다. 대통령이라니. 그것도 기다렸다는 듯 즉각 답이 나왔다. 근데 이상하다. 자신의 꿈을 말하는데 전혀 행복한 얼굴이 아니었다. 꿈이 아니라 계획 같았다. 각본 같았다. 그 순간부터 아이가 불쌍해졌다. 12시가 되자, 아이는 대기 중인 부모님의 차를 타고 다음 계획을 수행하러 떠났다. "쯧쯧쯧" 저절로 혀가 차졌다. "중학생이 너무 일찍 무거운 짐을 지었어. 한창 친구 좋아할 나이인데. 참 안됐다." 함께 있던 사람도 불쑥 한 마디를 던졌다.

요즘 제일 무서운 것이 중2란다. 북한이 남침을 못하는 이유 중 하나가 중2가 무서워서라는 우스개가 한창 유행이다. 오죽하면 그럴까. 어디로 튈지 예상불가에다 어떤 생각과 행동을 할런지 가늠하기 힘든 시기. 바로 사춘기이기 때문이다. 대부분 우리들은 그 시기를 겪는다.

성장통을 앓으면서 극복과 타협을 배우고 세상사는 지혜도 깨우친다. 그런데 그 아이는 오늘도 계획표대로 살아가고 있다. 부모님과 학교의 자랑이 되고자 그냥 살아가고 있다. 어쩌면 그 아이는 자기주장을 말할 기회조차 가져보지 못한 건 아닐까. 자기주장이 강해지는 지금의 은우 나이 무렵에 일찌감치 엄마한테 항복한 것은 아닐까?

벌떡 일어났다. 그냥 지나칠 일이 아니었다. 착한 은우보다는 멋진 은우로, 훌륭한 사람보다 행복한 사람으로 살기를 소망하는데… 우리 은우가 딸의 기에 눌리게 그냥 놔 둘 수가 없다. 이미 자정이 가까운 시간이지만 딸에게 전화를 걸어 되물었다. 왜 공부를 잘해야 하느냐고. 왜 너의 잣대에 자식을 맞추려드느냐고. 은우가 행복하기를 바라면 욕심을 버리고, 눈높이를 맞추며 이야기를 들어주는 부모부터 되라고.

"엄마는 은우할머니이고 나는 은우엄마니까요. 엄마노릇하기도 정말 힘드네요."

묵묵히 듣고만 있던 딸이 한마디 대꾸를 하더니 전화를 뚝 끊어 버렸다. 아무래도 딸이나 나나 쉽게 잠들기 힘든 밤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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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