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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예

수필가


한 청년이 꽃을 팔고 있다. 어, 누구지? 발걸음을 멈추고 살펴보았다. 좁은 좌판에서 꽃을 팔던 청년도 내 눈길을 의식했는지 고개를 들고 바라보았다. 민망하여 얼른 시선을 돌리고 딴청을 부렸지만 청년에 대한 호기심은 더욱 커졌다. 도대체 누구일까. 언제 만났을까.

"꽃 드릴까요?" 청년이 물었다. 아, 그 목소리! 드디어 생각났다. 오랫동안 뇌리에서 떠나지 않던 바로 그 목소리였다. 몇 달 전, 손자가 고열이 나서 응급실 신세를 졌었다. 응급실이야 늘 급한 환자들로 넘쳐나지만 그날따라 빈틈이 없었다. 냉동실 문에 매달려 놀다가 다리를 다친 어린이, 기계에 손이 끼어 피투성이가 된 남자어른, 생선가시가 목에 걸려 캑캑거리는 남학생, 교통사고로 온몸이 성한 곳이 없는 어르신 등등…. 여기저기서 통증을 호소하고 의료진을 찾느라 아비규환이었다.

손자는 응급실환경에 지레 겁이 났는지 집에 가자 성화였다. 그러나 경과를 보고 가라는 의사를 말을 무시할 수가 없어 손자를 달래고 있었는데 옆 침대에 있던 청년이 신음소리를 내며 막 소리를 질렀다. 아프다고. 살려달라고. 손자는 놀라 울음을 터트렸고 의사들도 달려와 청년을 살펴보기 시작하였다. 의사들은 청년의 몸을 진찰하며 어디 아프냐고 물어도 청년은 뒹굴며 비명만 질러대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청년은 의사의 질문에 답을 하였고 옆에 있던 우리는 청년의 사정을 알게 되었다.

위가 나빠 일주일 전까지 병원에 입원했었지만 집안 형편 때문에 퇴원하였고 다시 통증이 와 무작정 응급실을 찾았다며 진통제 좀 달라고 울면서 사정하였다. 의사는 검사를 해야 한다며 보호자를 찾았고 몇 번의 경련과 통증을 지난 후, 청년의 누나가 나타났다. "좀 쉬어야지. 낫지도 않았는데 일을 하니 재발하잖아" "나도 좀 쉬고 싶어. 쉬고 싶단 말이야! 그런데 일해야 먹고 살지" 청년은 엉엉 울부짖었다.

하고 많은 환자들 중에 청년이 기억에 남는 까닭은 무엇일까? 작고 초라한 모습도 아니고 먹지 못해 걸린 병이라는 청년의 탄식 때문만도 아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괴롭고 고통스런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아이를 낳는 아픔이 가장 큰 고통인줄 알았었는데. 산고 뒤에는 새 생명이라는 크나큰 선물과 환희가 있었으니 엄밀히 말해 고통은 아니었다. 예고된 기쁨이고 행복이었던 것이다. 그날 이후, 가끔 청년이 생각났다. 세상에서 가장 고통스럽게 울부짖던 모습이 떠올라 울적한 적도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데 우연찮게 그 청년을 보고 만 것이다.

청년이 웃고 있다. 봄꽃보다 더 환하게 웃고 있다. 가녀린 몸에 깊은 눈, 우뚝 선 콧날에 반듯한 이마. 어딘지 모르게 슬프면서 이지적이던. 바로 그 청년이 말이다. 아직은 수척해보이지만 그렇게 절규하던 청년이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밝고 당찬 모습이다.

서슴없이 노란 후리지아꽃 한 다발을 사 들었다. 후리지아의 꽃말처럼 청년의 새로운 시작을 응원하고, 청년의 앞날이 항상 밝고 향기롭기를 기원하면서 가벼운 마음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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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